요즘 라디오 방송에 나오는 김혁규(金爀珪) 경남도지사의 기업유치 광고다. 어떻게 해서든지 기업을 끌어들이려는 민선지사의 목소리는 호소를 넘어서 절규처럼 들린다.
10일 충남 천안시 풍세면 용정리 산업촉진지구.
고르게 다져진 4만5000여평의 공장부지가 수 개월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부고속전철 역사(驛舍)와 불과 5분 거리인 이곳은 경기도와 가까우면서도 땅 값은 평당 11만원에 불과해 공장을 지으려는 기업인들이 탐낼 만한 곳.
그러나 땅을 사겠다는 기업인은 나서지 않고 있다. 충남 천안시청 기업유치 담당공무원은 “수도권에 공장이 쉽게 들어설 수 있게 됐는데 누가 이곳에 공장을 짓겠느냐”고 반문했다.
천안시와 맞닿아 있는 연기군 월산공단도 기반시설공사는 모두 끝났으나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연기군 홈페이지에는 최근 ‘월산공단의 최후’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 전주3공단 6만여평은 LG전선이 99년부터 공장을 짓기 시작했으나 지금까지 기계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수도권 공장규제 완화 움직임이 있자 LG전선측이 입주를 미루고 있는 것.
내년 말 착공하는 오송보건의료산업단지(공장용지 150만평)는 충북도가 지난해부터 기업 유치에 들어갔으나 아직까지 단 1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수도권의 공장규제를 완화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입주 상담을 벌여왔던 경기 J기업 등 5개 중견 기업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며 “수도권 규제완화로 지방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상공회의소 이태호(李泰鎬)회장도 “수도권에서 내려온 기업 관계자들은 입버릇처럼 ‘총량제가 완화되면 수도권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교통부가 2월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를 열어 94년 제정된 수정법상의 공장총량제를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집행계획안을 마련하자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때 △산업단지는 총량규제에서 제외하고 △개별공장은 2000년 당초 배정물량보다 크게 늘리며 △가설건축물이나 허가신고대상이 아닌 건축물 등은 아예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
이 안은 지난해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낸 수도권 공장규제 완화안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조만간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서면심의를 거쳐 발효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비수도권 지역민들의 반응은 격렬하다.
전북도 박준배(朴俊培) 투자상담과장은 “수도권 인구 및 산업 집중억제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총량제가 수도권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집요한 로비로 사실상 사문화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건교부가 이 같은 완화안을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상정할 것으로 알려지자 10일 반대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1인 릴레이시위’에 들어갔다.
경실련은 성명에서 “지난해 제4차 국토종합계획에서도 우리나라 국토개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수도권 과밀과 지역간 불균형이 지적됐다”며 “건교부가 6개월만에 이를 무효화시키는 법안을 마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전국 비수도권 10개 광역자치단체도 산하 발전연구원의 공동연구를 통해 수정법 개정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전 국토의 11.8%에 지나지 않는 수도권에 인구, 제조업체 등이 50%나 집중돼 있고 수도권의 교통혼잡비용도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것.
이들은 “시장경제논리에 급급해 공장총량제를 폐지한다면 수도권 과밀현상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며 “오히려 일본처럼 모라토리엄(완전입지불허)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대표 권용우(權容友·53·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지역간 불균형이 새로운 망국병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수도권의 경우 불가피한 기능만을 최소한 입지시키는 정책을 유지해야 국가의 장기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울산청주〓이기진정재락지명훈기자>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