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은 수도권과 지방의 지법 배석판사와 고법 배석판사, 지법 단독판사와 부장판사 등을 두루 거쳐야 하는데 동기 중에서 서열이 높은 판사가 동기들에게 주어진 자리 중 우선적으로 좋은 곳을 차지한다. 고법부장이 된 뒤 대법관이 되기 전까지의 인사 역시 서열 중심.
서열이라는 기준이 파괴되는 경우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 때와 대법관 승진 때. 이 경우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은 서열 외에 ‘업무성과’와 ‘지역안배’ 등의 기준을 적용해 동기 중 일부만을 승진시키며 후배 기수에 추월당한 선배는 영영 기회를 잃는다.
결국 이번 법관 인사분석을 통해 나타난 법관들의 지역안배 현상은 사법시험과 법관 임용절차를 지나면서 형성된 자연적인 인구분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고법 부장판사 이상 고위직 법관의 지역안배 현상은 이같은 자연적인 분포에 법원 수뇌부의 인위적인 안배가 조합돼 나타난 현상이다.
이같은 시스템은 검찰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검찰도 지난해부터 세밀한 기준에 따라 인사를 한다고 하지만 그 기본은 ‘성적순보다는 일 잘하는 검사를 중히 쓴다’는 것. 이같은 막연한 기준 때문에 인사철만 되면 인사권자 주변에는 각종 인사청탁이 난무했고 인사권자는 마음먹은 대로 지연 학연을 인사에 반영할 수 있었다. 법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초기의 사법연수원 종합성적에 따라 현재의 모든 법관을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견과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판사와 대법관 승진에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이 과정에서 법관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주장 등 반론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모든 법관이 인사에 연연하지 않고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재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이상’과 누군가 한두번은 성적 이외의 기준으로 판사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현실’에 따라 현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번 분석 대상이 된 판사는 1483명인 데 비해 실제 판사 수는 1476명이다. 변재승(邊在承) 대법관 겸 법원행정처장처럼 겸직 중인 판사 7명이 한번 더 계산됐기 때문이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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