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운전실은 지하철에서 유일하게 시야가 트인 곳입니다. 그렇다고 뭐 아름다운 풍경이 뵈는 건 아니고 대부분 시커먼 굴 속인데 그저 앞 잘 보고 여러분 안전하게 모시라고 앞이 뚫린 것이겠죠.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근무하지만 한번에 1000명이 넘는 승객을 모시는 만큼 안전에 관한 한 최대의 시야로, 최고의 주의를 기울이려 합니다.
▼"발차"고함 치며 졸음 쫓아▼
저희는 운행 때 모든 동작에 구호를 붙입니다. 출발 때는 ‘발차’, 멈출 때는 ‘정차’라고 외치고 역 사이에 200m마다 설치된 신호등 표시가 파란등일 때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진행’, 앞 전동차와 간격이 충분치 않아 주황색등이 켜지면 ‘감속’이라고 외치며 장치를 조작합니다.
계속 파란등일 때는? ‘계속 진행’이라고 하죠.
스스로 정신 차리라는 ‘주문’같은 건데, 1시간 반 넘게 혼자 운행하다 깜박 조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더군요.
저희가 마치 자동차처럼 둥근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줄 아는 분도 있던데 전동차는 선로를 따라 가니 방향 장치가 필요 없습니다.
대신 자동차 액셀러레이터에 해당하는 제어기와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 제동기만으로 운전합니다. 최근 개통한 2기 노선엔 두 기능이 합쳐진 자동 조작기가 설치돼 한 손으로 작동이 되지요. 세월 많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전동차에도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운행중 제어기를 3초 이상 놓고 있으면 비상벨이 울리는 겁니다. 시속 3㎞이상 운행 때는 왼손으로 항상 제어기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 졸거나 몸상태가 안 좋아 느슨하게 잡고 있다는 얘기죠.
▼운행중 배탈 나 혼난적도▼
몸상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버스나 택시 운전사는 용변이 급하면 중간에 세울 수라도 있지만 우리는 1회 또는 2회 연속 운행을 마칠 때까지 내릴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운전실 내에 화장실은 없고요.
저도 초년 시절, 전날 마신 술로 배탈이 나 사색이 된 적이 한두 번 있었지만 지금은 체질도 변했는지 그런 응급 상황이 좀처럼 안 생깁니다. 물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비닐봉지는 늘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유비무환이니까요.
그런데 운전실에만 있다 보니 승객과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대중교통수단 가운데 승객과 운전자의 교감이 가장 적은게 지하철이죠. 막차 운행 때 가끔 술기운에 운전실 옆문을 걷어차며 ‘당신 왜 쳐다봐’ 하며 소리치는 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승객이 있기에 저희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쩌다 조금 낡은 전동차를 타더라도 늘 최선을 다하는 저희가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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