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1000회 공연을 돌파한 대한민국의 간판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자 김민기(金敏基·50)씨에게 지하철은 그 시대 민중을 비추는 ‘오목거울’이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결코 과장없이,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들의 욕구와 몽상(夢想)까지 그득 싣고 달려왔다. 뮤지컬로서는 유례없는 1000회 돌파도 “‘밑바닥’을 훑었기 때문”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 독일 원작의 제목이 ‘Linie 1―Das Musikal’이어서 ‘지하철 1호선’이 되었을 뿐 그에겐 1호선이나 8호선이나 똑같다. 그에 따르면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서로 소통은 거의 없으면서도 속으로는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단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 갈 궁리하기, 앞에 앉은 여자 보면서 ‘삼삼한데’하며 속으로 침 흘리기…. 그래서일까. 작품 속 승객들의 시선은 늘 어긋난다.
“마주앉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됐을까/말이나 걸어볼까 생각도 했었지/하지만 왜? 언제? 어떻게? 무슨 말을?/그저 전철에서 만난 남남인데/…/참 멍청하게 생겼다/너 속에 꺼먼 거 입었지?/아니, 어딜 쳐다봐? 저 자식이….”(극중 노래 ‘맞은 편’ 중에서)
이런 소통 없음은 곧잘 세상에 대한 냉소로 둔갑하기도 한다. 매일 지하철 3호선으로 일산에서 대학로에 출근하는 김씨. 출발지인 마두역부터 지축역까지는 지상철(地上鐵)이라 바깥 풍경이라도 구경할 수 있지만 서울로 접어들면 이내 굴 속이다.
“에이, 이놈의 전철이 경치 구경도 못하게 하네.” 좌석을 찾아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이런 냉소는 작품 속에서 더욱 확장된다.
“잡상인 : 알뜰주부의 필수품. ‘안 넘어가’ 회사의 ‘안 찢어져’ 고무장갑.
승객들 : 새겠다. 그치? 찢어지겠다. 그치?
잡상인 : 내일이면 없어. 절호의 찬스 놓치지 마. 시내에서는 만원에도 어림없어.
승객들 : 참 싸다. 그치? 못쓰겠다. 그치?”(‘싸구려’ 중에서)
냉소는 종종 분노로도 이어지지만(“가지도 못하는 자동차/취직도 못하는 고학력/…/한옥은 달동네에만 남았네”, ‘서울의 노래’ 중에서) 아직 김씨는 살벌한 지상보다 지하에서 인간의 온기를 더 자주 발견한다.
“물론 편한 게 으뜸(그는 운전면허도, 자가용도 없다)이지만 무엇보다 ‘인간’들을 마주칠 확률이 높아서 좋죠. 그래서 계속 탈 거고 공연도 이어집니다.” 4월부터는 국산 ‘지하철 1호선’이 원산지인 독일 베를린에서 ‘초청 운행’도 갖는다.
“지하철을 타세요/편안하게 모셔요/시내에선 제일 빨라요/애인 만나 데이트할 시간도/술 마실 시간도 많아져요/…/별별 사람구경 해봐요.”(‘지하철을 타세요’ 중에서)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