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8분 뒤 출발하는 ‘서울역행 직통열차’(철도청 운행)를 타기 위해서였다. 7시45분에 출발하는 전동차는 꼭 1시간 뒤인 8시45분에 서울역에 정차하지만 8시3분에 출발하는 직통열차는 이보다 5분 이른 8시40분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게다가 역마다 서는 일반 전동차와 달리 군포, 영등포 등 5개 거점역에만 정차해 달리는 기분도 한결 시원하다.
이같이 급행열차에 대한 승객들의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지만 정작 서울 지역의 지하철엔 모든 역마다 정차하는 ‘완행’뿐이다.
선진국 도시들에선 다양한 종류의 지하철이 제공된다. 일본 도쿄의 경우 역마다 정차하는 완행부터 주요 거점역만 정차(Skip Stop)하는 급행, 특급, 직통 등이 있다. 사철(私鐵)인 쾌속 특급의 경우 시속 120㎞까지 운행하기도 한다. 시속 20∼30㎞에 불과한 버스나 승용차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속도다. 도쿄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이 70%가 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다. 완행열차와 시속 53㎞로 주요 거점역과 환승역만 정차하는 고속열차(RER)가 함께 다닌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완행뿐일까.
서울지하철 관계자들은 급행열차를 운행하려면 추월선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건설 당시부터 이를 고려하지 않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지금의 열차제어시스템으로는 2분30초마다 출발하는 완행 사이에 급행을 추가로 넣을 수 없다는 것.
일견 그럴 듯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핑계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지하철 당국이 승객의 편의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쓴다면 기존 노선에 추월선이나 대피선을 만들고 도쿄처럼 열차제어시스템의 성능을 1분30초마다 운행이 가능하도록 향상시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또 이는 새 지하철 노선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지적한다.
지하철 노선의 신설에 드는 비용은 ㎞당 1000억원 가량. 30㎞짜리 신설 노선이면 자그마치 3조원이 든다. 이에 반해 추월선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노선당 2000억∼4000억원 가량. 1개 노선을 신설할 돈으로 1∼8호선 모두에 추월선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모의실험 결과 2호선에 환승역만 정차하는 급행열차를 도입할 경우 소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특히 분당선, 일산선 등에 급행열차를 도입할 경우 엄청난 승객 유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