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는 시퍼런 칼날의 독기가 뚝뚝 묻어나지만 실제 서교수는 소녀같았다. 실처럼 가느다랗게 떨리는 음성, 안경너머 동그랗게 쌍꺼풀진 눈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 감정이 복받치면 가슴이 울렁거려 말로는 대거리를 못하는 성격. 그래서 그에게 글쓰기는 말로 알리지 못한 자신을 알리고 승인을 구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껏 일생의 하루도 빈둥거려 본 일없이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는 사회에 기여하려고 노력했으며 얼마간 업적도 있는데, 누구를 비판한 것을 계기로 이런 인터뷰 요청을 받게 돼 망서렸다”면서 “내가 몹시 호전적이고 비난을 업으로 삼는 사람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 같아 나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역시 말로는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피력하지 못할까봐, 기자가 ‘질문 요지’를 주지도 않았는데 서교수는 미리 ‘답변 요지’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도올이 논어를 강의한다고 했을 때 그의 스타일이나 성격으로 보아 자칫 군자를 비속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었어요. 처음 한두번 TV를 보다가 안보는 것이 속 편하겠다 싶어서 안보았는데, 기독교에 대한 발언으로 물의가 인 뒤에 무슨 발언을 했나 궁금해서 다시 보기 시작했어요. 반은 불안한 파수꾼의 심정이고, 반은 그의 인기라는 우리사회의 문화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지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에서 봉직한 일이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자제했다. 그런데 “공자가 나한테 점수땄어”는 말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자님’과 논어를 어떻게 비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간지에 두차례의 칼럼을 썼고, 그 뒤 여기저기서 “그렇다” “아니다” “이런 면도 있다”는 소리가 터져나와 이제는 온나라가 들썩대는 ‘현상’으로 번졌다. 서교수에 대해서도 “영문학자가 무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서양문학을 웬만큼 공부하고 나니까 동양을 너무 모르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돼 사설 학숙에서 세차례에 걸쳐 논어 강의를 들었어요. 서양의 종교에서는 도덕적 행동이 고통스러운 자기희생이고 그 보상은 어떤 다른 존재가 추후에 해주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에 비해 공자 사상에서는 ‘군자’가 된다는 것, 그 윤리적 행위가 고통이 아니라 편안하고 즐거움이 되는 경지이며 그 경지 자체가 덕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내가 공자에게 매료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도올 해석의 오류가 근본적으로 공자라는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온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서교수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도올 보다는 KBS라는 공영방송에 있다고 말했다.
“KBS가 도올의 스타일을 잘 알면서 그런 황금시간에 흥미위주의 프로를 맡겼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봐요. 현대사회에서 윤리적인 가르침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하는가,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봐야할 일이예요. 서양 사상은 학문적 논리적으로 평가하고 전달하는데 비해 동양 사상은 이론적이라기 보다 윤리적 도덕적 가르침으로 전달해야 하니까요.”
물론 도올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인기전술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런 프로가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서교수는 덧붙였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전달하는 방법이 아니라는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도덕선생님이 꼭 도덕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듯, 반드시 군자여야만 군자를 강(講)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교수는 “그러나 공자의 사상은 공자가 평생동안 지향한 바에 대해 깊은 공감이 없으면 그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전달하기도 어렵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통해 서교수의 성격이나 살아온 과정을 살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세상에 비치는 그의 두가지 모습이 너무나 딴판이기 때문이다.
맵고 독한 글, 그러나 유약한 소녀같은 교수상. “내 글이 강하고 대담한 편이라면 그건 바로 내 지나치게 소극적인 평소 성격의 동전 뒷면과 같은 것”이라는 게 서교수의 설명이다.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별로 없이 거의 혼자 책과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면 폐쇄공간에 갇힌 사람처럼 어떤 심리적 장애를 갖게 됐을 지 모른다고도 했다.
서교수와의 대화는 어떤 말로 시작하더라도 대부분 공자와 연결지어 마무리되어졌다. ‘논어 논란’과 상관없이 만났더라도 인터뷰 주제는 ‘서지문과 논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봉건적인 집안’의 막내로 한번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지 못하면서 자랐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군자라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 칭찬이 아니라 불만의 표현이었다. 점잖기만 할 뿐 박력도 모자라고 추진력도 없다는 의미에서다. 이 얘기를 하면서 서교수는 “그러나 논어를 공부하며 우리가 군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군자는 세상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면서도 강렬한 인(仁)을 지닌 인물이며, 세상을 구제하려고 하는 점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누가 공자를 훼손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얘기다.
어려서부터 놀이나 운동에 너무나 소질이 없던 그는 많은 시간을 혼자 책을 읽으며 보냈다. 어린 눈에 보이는, 그리고 책에서 비쳐지는 인생의 비극이라든가 사회부조리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무력감에 괴로워했다. 왜 이 세상에는 뻔뻔스럽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더 잘살고 선량한 사람은 대부분 억눌리고 피해를 입으며 살아야 하는지, 그 터무니없는 불의의 이유를 밝혀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제는 그 의문을 알아냈는지 궁금해서 해답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싶은 듯 잠깐 난감해 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서교수는 말했다.
“문학에서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지요. 욕망은 넘치는데 자기 안에서 구해야 할 것을 남에게서, 바깥에서 구하니까. 자신의 내적인 가치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돈이나 지위 같은데서 가치를 찾으려 하니까요.”
영문학과 논어는 이 점에서도 비견될 수 있다. 그는 “영문학에서는 인간의 부조리 불합리를 낱낱이 밝히거나 혹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자는 이같은 문제를 다 꿰뚫어보면서도 감싸안으면서 수양을 통해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利)를 위해 살지말고 의(義)를 위해 살라는 것이 공자 가르침의 요체라는 설명이다.
서교수는 누구나 인생에서 몇번쯤은 행운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미국유학을 하고 싶어 애를 태울때 미 국무성 장학생으로 뽑힌 것이 그의 일생최대의 횡재였다. 그러나 횡재수에는 모종의 불이익이 따라오는 것이 인생의 진면모라는 게 그의 지론. 미국서 공부를 하는 동안 혼기를 놓친 것이다. 결혼을 안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밥을 짓는 시간에 책을 못읽는 것이 안타깝지 않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특히 밤에만 머리가 맑아지는 야행성 체질이라 지금은 늘 결혼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영문학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인생의 기술’이다. 무지막지한 질문이다 싶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의 기술이냐”고 물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가능성도 많고 타락할 가능성도 많지 않나요.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어느 한쪽의 가능성만 보지만, 그 사람의 결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서로서로 받아들이고 공존을 하면서 좋은 가능성을 살려주려고 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겠어요?”
가만있자, 이것도 공자가 제자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었던가. 도덕성이 사회적 조화 뿐 아니라 내적인 평화와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고찰한 논문, 서교수가 논어를 접하기 전에 쓴 이 내용은 놀라울 만큼 공자의 사상과 맞닿아 있었다.
<만난 사람=김순덕 차장>yuri@donga.com
◇서지문 교수는?◇
△1948년 대전 출생
경기여중고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 조지아대 석사, 뉴욕주립대 영 문학박사
△1978― 현재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1983―84 학술진흥재단 파견 영국런던대학 객원교수
△1988―89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초빙 연 구교수
△1984 대한민국문학상 번역부문 수상
△1992―94 영미문학 페미니즘학회장
△1995―96 The Royal Asiatic Society 회장
△1999―2000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교수
△2000 PEN문학상 번역부문 수상
△저서
‘인생의 기술:빅토리아조 문필, 사상가들의 윤리적 미학이론 연구’‘Faces in the Well’‘어리석음을 탐하며’‘Remembering the
Forgotten War’(공동집필 편집)
△역서
‘Discover Korea’ ‘The Descendants of Cain’‘The Rainy Spell and Other Korean Stories’ ‘The Golden Phoenix: Seven Contemp―orary Korean Short Stories’등
△취미:여행
△좌우명:뒤꼭지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현재 소원:제자들이 취직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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