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SA는 이스라엘에서 예술과 과학 분야의 내로라 하는 영재들이 모여있는 사립고. 세포핵 이식법에 관한 난해한 강의를 듣고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을 것 같은 영재들이 윤리 논쟁을 벌이는 것은 뜻밖이었다.
학생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제조)를 수행하라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 후회없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다. 원자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기술만 자랑하던 과학자들이 불행한 세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동물 복제 강의는 생물교사만의 몫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생물교사에게 배아 분리와 세포핵 이식의 원리를, 철학 교사에게 복제 기술의 윤리 철학 종교적인 문제를, 법학 교사에게 인간 복제를 둘러싼 각국의 규제 현황 등을 배우고 있었다. 동물 복제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만이 아니라 윤리적 법적인 접근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글 싣는 순서▼ |
-1부 영재교육- |
이스라엘 영재교육의 키워드는 단연 ‘학제간(學際間)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이다. 영재들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리더들이며 리더는 단순한 기술자나 과학자가 아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요즘 세상은 복잡해서 하나의 전문 분야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재채기를 하는 이유는 의학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환경적 요인과 도시공학을 알아야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다. 첨단 지식을 복합적으로 갖춰야 해결책이 보이고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다.”(에리카 란다우 박사, 세계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
이 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는 야라 진저양(17)은 친구 이단 드비르군과 사회시간에 시리얼 광고물을 만들면서 학제간 접근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됐다.
진저양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다양한 종교와 정파가 존재하며(종교학) △이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구매력이 각기 달라(사회학) △이들을 설득해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특정한 광고 기법이 적용돼야 한다(심리학)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쁜 여자 모델이 나오면 광고 효과가 좋은 줄 알지만 정통파 유대인들은 보수적이어서 광고 효과가 오히려 반감돼요. 이들은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단정히 차려입은 남자 어린이를 모델로 내세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요.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심리학뿐만 아니라 종교학과 사회학적 지식도 필요해요.”
라마트간 힐렐스쿨 중학교 1학년 영재특별반에서는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그린 이탈리아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소재로 3개 과목 합동 수업이 영어로 진행됐다.
영화담당 교사는 이 영화가 오스카상을 탄 이유를 물었고 역사 교사는 “영화 속 홀로코스트와 실제 역사가 일치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영어 교사는 △영화의 끝 부분을 영어로 다시 쓰기 △영화 속 주인공이 돼 영어로 일기쓰기 등을 과제물로 내줬다. 영어는 이처럼 역사 컴퓨터 미술 등 다른 과목과 곧잘 합쳐진다. 학생들은 유명한 소설의 책 표지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들고 뒷면에 영어로 내용을 요약한다. 학교 안팎의 소식을 간추리거나 여러 취미활동 등을 소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영어로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수학과 히브리어(이스라엘어)도 재미있게 통합된다.
영재반 학생들은 10세가 되면 소설 속에 수학 문제가 적절히 들어가 있는 ‘이야기 수학’을 배운다. 이 책은 일반 학생들의 수학 교재로도 활용된다.
책 한쪽 면엔 ‘옛날에 세 형제가 길을 가다 땅콩 100개가 든 보따리를 발견하고 나눠갖기로 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한쪽 면엔 ‘100 나누기 3’ 등 세 형제가 풀어야 할 수학 문제가 딸려 나온다. 수학이 추상적인 숫자놀음이 아니라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도구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훌륭한 수학 문제집은 완성도 높은 결말로 이어진다.
“세 형제가 땅콩을 공정하게 나누는 법을 놓고 다투다 결국 랍비에게 갔다. 랍비는 막내가 다 가지라는 의견을 냈다. 첫째와 둘째가 항의하자 랍비는 말했다. 인생은 원래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예루살렘·라마트간〓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영재판별 시험은
해마다 6월이 되면 이스라엘의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들은 교육문화체육부로부터 영재 판별시험이 8월에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응시하라는 편지를 받는다.
1차 시험은 국어와 수학 각각 20문제로 객관식. 2차는 어휘 문장완성하기 수학 도형 일반지식 등 5개 분야 100문제로 객관식이다.
교육부는 5년마다 민간 연구소를 대상으로 경쟁 입찰로 출제기관을 선정한다. 시험 비용은 국가 부담.
1차에서 지역별로 응시생의 15%를 뽑고 2차에서 5% 정도를 최종 선발한다. 지역별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대도시 어린이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가난한 지역 학생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시험에서 떨어진 학생은 자비 부담으로 재시험을 볼 수 있다. 탈락생들 가운데 10∼20%가 재시험을 치른다.
영재판별 시험에는 해마다 6만명 정도가 응시한다. 지난해는 이 가운데 3200명이 최종 선발됐다.
영재들은 고교 과정이 끝난 뒤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진학시 혜택은 없다.
이스라엘의 올해 교육 예산은 미화로 50억달러. 이 중 영재교육 예산은 0.04%인 200만달러. 영재 판별시험에 75만달러가 들어가고 나머지는 교사의 월급 보조금으로 쓰인다.
슐로미트 라흐멜 영재담당국장은 “전체 교육 예산의 25%를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 30% 가량을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쓰는 등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면서 “앞으로 사회적 공헌도가 높은 영재들을 위한 예산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영재 교육기관 프로그램 어떻게
이스라엘 정부가 주관하는 시험에서 영재로 선발되면 △일반 학교의 영재 특별반에 들어가거나(상위 1%) △매주 하루 학교 수업에서 빠져 인근 영재 교육기관으로 가거나(weekly pullout) △대학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 밖에 자체 선발시험을 거쳐 영재 교육을 실시하는 사립고도 있다.
▽힐렐스쿨〓초중학교 9년 과정의 공립으로 영재 특별반을 운영한다. 전교생 701명 중 171명이 라마트간시 상위 1%에 드는 영재들. 지능지수는 140∼145. 3명 중 2명이 남자다.
영재교육 담당 교사는 20명. 교육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주제와 관련된 교과목 교사들이 합동 지도한다. 주요 프로젝트는 과학과 기술, 영화 속 코미디, 우주, 법률적 사고, 어린이들의 인권,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 선사시대, 인간, 경제, 미술 등 다양하다.
사회성 발달을 위해 정규 수업 이외에는 일반 학생들과 어울려 특별 활동을 한다. 일반 학급의 후배나 정신지체아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과 부모의 지나친 기대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받는 영재들을 위해 심리학자와 상담교사를 두고 있다.
▽오펙스쿨〓초중학생을 위한 풀아웃.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고 5일 내내 수업이 진행된다. 학생은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1주일에 하루 수업을 빠지고 이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한다. 예루살렘에서는 상위 5%에 드는 학생 530여명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교육 내용은 수학적 사고, 창의적 글쓰기, 컴퓨터, 체스, 애니메이션, 논리학, 영화, 신문기사 작성, 철학 등 30여가지. 예술가 엔지니어 철학박사 시인 등 전문가들이 수업을 맡는다. 학생 1인당 매년 350달러(약 47만원)의 수업료를 부담한다.
▽어린이 창의성과 우수성 개발 연구소〓텔아비브대 부설 방과후 프로그램. 만 5세부터 중학생까지 전국 1000여명의 영재들이 학교 수업 후 매주 1, 2회 수업을 받는다.
우주공학 생물 물리 광학 통계 공상과학 등 과학 과목, 성경 고고학 리더십 동양학 심리학 역사 유머 등 인문학과 사회학, 말하기 그래픽 드라마 인형극 창의적 글쓰기 등 예술분야 교과과정이 있다. 한 학기 수업료는 180달러(약 24만원).
▽이스라엘 예술과학 아카데미〓한국의 예술고와 과학고에 해당하는 사립 기숙사 학교. 200명 정원. 1차 필기시험에서 잠재력, 수학적 사고, 기억력 등을 테스트해 200명을 거른다. 2차에서 인터뷰로 130명을 뽑는다. 3차에서는 3일간 학교에서 실제 수업을 듣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70명을 최종 선발한다. 이 중 절반이 물리 화학 생물 등 과학분야, 나머지가 음악과 미술 전공자들. 교사는 70명으로 학생 3명당 1명꼴. 이 중 9명이 박사, 나머지는 모두 석사. 연간 학교 운영비 400만달러 중 25%를 정부가 부담하고 60%는 기금으로 충당한다. 학생의 연간 수업료는 6000달러. 학생의 90%가 장학금을 받는다. 매주 반나절 동안 장애인이나 편부모 자녀를 지도하는 등 자원봉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예루살렘·라마트간〓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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