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한국]이제 첫걸음… 여건·투자 현황

  • 입력 2001년 4월 16일 19시 07분


중학생들이 폴리드론 퍼즐을 이용해도형의 전개도를 그리고 있다.
중학생들이 폴리드론 퍼즐을 이용해
도형의 전개도를 그리고 있다.
▼서울 한성과학고 영재반 중학생 46명 첫수업 현장▼

14일 오후 2시반 서울 한성과학고의 중학생 영재반의 첫 과학시간. 수학 과학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서울 시내 중학교 2학년 학생 중에서 선발된 23명의 호기심에 찬 눈동자가 교사에게 집중됐다. “여러분,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지요. 복잡한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눈을 지그시 감아보세요. 모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면서 무슨 악기로 연주하는지 생각해봅시다.” ‘강의’를 들을 것으로 기대했던 학생들은 ‘음악감상’에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조플린의 ‘엔터테이너’(피아노),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기타), ‘아름다운 로즈마리’(바이올린), 비제의 ‘아를의 여인’(플루트) 등 4곡의 음악을 틀어주자 모처럼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한 표정이었다.

교사가 ‘어떤 악기로 연주했는지 차례대로 맞혀보라’고 하자 모두 맞힌 학생이 16명이었다.

교사는 “소리를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악기의 소리에 어떤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신시사이저의 원리’를 설명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도 사투리가 있을까’ ‘진짜 노래와 모창의 차이’ ‘고양이 목소리만 연주하기’ 등 ‘괴짜 질문’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했다.

▼글 싣는 순서▼

  -1부 영재교육-

1. 미국
2. 싱가포르
3. 호주
4. 중국
5. 이스라엘
6. 한국

박가영양(15·봉원중 2년)은 “소리굽쇠, 바이올린, 피아노, 사람의 목소리가 어떤 파형과 주기를 지녔는지 보여주는 실험과 전문가만 다루는 줄 알았던 신시사이저를 다루는 실험을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물리교사 전영석씨는 “학생들이 소리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이를 분석 관찰하는 자세를 갖게 하려는 수업”이라며 “우수한 능력의 학생들이라 이해도 빠르고 공부 집중력이 남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수학반 교실. 23명의 학생들이 플라스틱 조각으로 이뤄진 ‘폴리드론 퍼즐’을 이용해 만든 정육면체를 분해했을 경우 각기 다른 모양의 전개도가 몇 개나 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은 퍼즐을 이리저리 맞추며 그림을 그렸다. 답(11개)을 찾아내도 답 사이에서 규칙을 찾아내 이를 수학적 논리로 증명하는 것까지 마쳐야 한다. 처음에는 난감해하던 학생들도 대부분 근접한 답을 내놓았다.

최정화양(15·서초중 2년)은 “실험 없이 이론만 배우는 학교와 달라 공부에 더 흥미가 생긴다”며 ‘생산적인 공부’라고 평했다.

▼'영재 수업' 개포中 강희정양▼

“내가 영재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하기 힘든 수업을 들으면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볼 수 있는 도전적인 기회가 주어져 너무 기쁩니다.”

14일 서울 한성과학고의 ‘중학생 영재반’에서 첫 수업을 듣고 난 개포중 2학년 강희정양(15)의 얼굴은 밝았다.

강양은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이해력이 빠른 편이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선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강양이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과학동산’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해 신비한 과학의 세계를 맛본 뒤 ‘꿈’이 바뀌어 버렸다.

그 뒤 틈나는 대로 과학대백과 등 과학서적을 뒤적였고 과학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과학신문’은 과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학교에서도 ‘자연연구반’에서 특기 적성활동을 하고 과학교사가 보는 책을 빌려다 읽을 정도로 과학에 푹 빠졌다. 강양은 또래 친구들로부터 ‘너무 조숙하다’ ‘어른 같은 말만 한다’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강양은 “교과서를 무조건 외우는 공부는 싫고 내 나름대로 궁리해보는 공부가 좋다”며 “뭔가 한가지만 잘 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을 잘하는 ‘만능학생’이 돼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강양은 “앞으로 과학고에 진학하는 것이 소망”이라며 “꼭 영재반이 아니더라도 과학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른 친구들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척박한 현실▼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은 척박하다. 영재교육진흥법은 내년 3월에나 시행될 예정이다. 국가 차원의 영재교육은 없다. 한국과학재단에서 15개 대학에 지원해 운영하는 과학영재교육센터와 이번에 문을 연 서울지역 과학고의 영재반 운영이 그나마 체계적인 영재교육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재단은 1개 대학에 1억5000만원씩 올 한해 2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과학고, 한성과학고 등 2개교에 2000만원씩 배정했지만 학생 선발과정에서 거의 써버린 상태다. 2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할 예정이지만 여의치 않다.

다른 지역교육청도 소규모로 영재교육을 하는 곳이 있다. 학부모들은 믿을 만한 영재교육기관이 없어 사설 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2004년 이후 영재학교를 단계적으로 보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올해 서울 신방학중학교 등 전국 4개 초중고교를 영재학교 시범연구학교로 지정했지만 아직 준비 부족 등으로 수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영재학교를 만들지 않고 방과후 프로그램 형태의 영재반이나 영재학급을 운영, 특기 적성 교육차원에서 접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연세대 인천대 등 15개 과학영재교육센터에서 초등학생 745명, 중학생 2205명 등 2950명이 영재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정보과학 등 6개 분야의 과정이 개설돼 있고 1년차 기초과정, 2년차 심화과정을 거쳐 3년차까지 올라온 98명의 학생들은 대학 교수에게 1대 1로 사사(師事)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있다.

과학영재교육센터 현황(자료:한국과학재단)
대학인원전화인터넷 홈페이지
서울대16602-880-7781 http://edulab.snu.ac.kr/gifted
인천대231032-770-8917 http://isep.inchon.ac.kr/
아주대209031-219-1581 http://cge.ajou.ac.kr
경남대222055-249-2785 http://nobel.kyungnam.ac.kr/
경북대231053-950-6423 http://secgy.knu.ac.kr/
전남대213062-530-3905 http://altair.chonnam.ac.kr/∼csge
전북대213063-270-3603 http://gifted.chonbuk.ac.kr/
청주교대281043-279-0625 http://www.cucocr.org
강원대109033-250-7090 http://www.kangwon.ac.kr/∼gifted
부산대253051-510-3021 http://gifted.pusan.ac.kr/
연세대23602-361-4844 http://math2.younsei.ac.kr/
제주대182064-754-3285 http://www.cheju.ac.kr
강릉대150033-640-2301 http://www.kangnung.ac.kr
공주대134041-850-8277 http://science.kongju.ac.kr/center
서울교대12002-3475-2459 http://seoul-e.ac.kr

▼인천대 영재센터소장 박인호교수▼

“영재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활용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인천대 과학영재교육센터 소장 박인호 교수(물리학과·사진)는 영재교육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몇 번씩 강조했다.

이 센터는 이름 있는 대학들이 운영하는 과학영재교육센터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98년 이 센터를 설립하면서 초대 소장을 맡은 박 교수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

“인천의 교육 여건이 좋지 않다는 말이 나돌자 대학이 지역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었습니다.”

박 교수가 시청 실무자와 시의회 의원들을 쫓아다니며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설득한 끝에 시에서도 전폭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다. 한국과학재단이 1억5000만원을 지원하면 시에서도 1억500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인천대 영재교육 교수진은 다른 대학에 비해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수 30명, 과학고 등 학교 교사 50명, 석박사급 조교 20명이 영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재교육 프로그램도 직접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수학 과학 물리 화학 등 6개 분야에 걸쳐 231명을 가르치고 있다.

박 교수는 “영재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에 자주 ‘학부모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며 “성적에 연연해 암기식 교육을 받거나 경시대회에 참가하려고 학원 등지에서 반복 교육 등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영재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학원들의 솔깃한 말에 학부모들이 흔들려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인천대는 영재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4월까지 ‘사이버영재교육’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이다. 올해는 중학생, 내년에는 초등학생 과정이 선보인다. 사이버영재교육에 참가한 학생들의 과제수행 능력 등이 이 사이트에 자동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이 사이트를 영재교육 심화단계 대상자를 선발하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이 사이트를 근간으로 삼아 15개대의 과학영재교육센터를 연결하고 사이버영재교육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과학영재교육센터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연간 1억5000만원씩 지원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며 “교수와 교사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교사 재교육을 시키고 영재교육에 참여한 교사에게 업적 인정 등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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