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한국의 영재교육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41분


◇내년 '진흥법' 발효…준비는 "글쎄"

박정호군(가명·15)은 6살 때 지능지수(IQ) 157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영재. 생후 17개월만에 숫자를 익히고 두 살 때 한글을 깨우쳤다. 5살 때 수박쌓기 문제를 풀면서 미분 방정식을 푸는데 쓰이는 가우스 공식을 이용할 정도였다. 유치원 시절 몇 시간씩 자신이 원하는 블록을 쌓을 때까지 집착했고 이를 방해하는 친구들과 싸우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덧셈 곱셈을 배우는 또래들과 학습진도가 맞지 않아 혼자 방정식을 풀며 딴짓을 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해 혼이 나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두 번이나 옮긴 끝에 간신히 졸업했지만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중학교 3학년에 다닐 나이지만 틀에 박힌 학교 공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컴퓨터에 빠져 ‘방황’하고 있다. 한때 과학고의 청강생이 되기도 했지만 입학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일자 지금은 아예 행방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박군 아버지는 “사람들이 아이를 마치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보는 것이 너무 괴롭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하루 빨리 영재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고 말했다.

영재성이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특별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또 누가 ‘진짜’ 영재인지 판별하기도 헷갈린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한달에 수십만원씩 하는 영재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등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2002년 3월부터 영재교육진흥법이 발효되지만 준비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상반기 중 시행령을 만들고 연내에 영재교육 시범학교를 지정할 계획이지만 별도의 영재학교 설립 여부, 대입 때 영재학생의 전형방법 등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행령안은 중고교 과정을 통합하는 영재학교를 설립, 엄격한 영재성 판결 과정을 통과한 학생들을 한 학급에 20명이 넘지 않도록 편성해 교육하기로 했다. 능력에 따라 학년을 뛰어넘는 월반도 가능하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일반 학교로 전학을 허용한다.

영재학교 내에 전문가로 구성된 영재판별위원회에서 지능지수, 학업 우수성, 특수학문적성, 창의성 등을 기준으로 영재성을 판별해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

영재학교 외에 일반 초중고에도 영재학급(학급당 20명 이내)를 운영하고 대학 국공립연구소 정부출연기관 등 공익 법인도 영재교육원을 세워 다양한 영재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영재학교 졸업자를 대입 전형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큰 관심사다. 당초 특례입학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하지만 특혜시비가 일자 대학별로 영재학생을 특별전형을 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는 영재학교가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의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한 것이다.

교육부는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영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면서 “연구학교 운영 등 실험과정을 거쳐 2004년 이후에나 영재학교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은 “영재학교를 도입하면 이 학교 입학을 위한 과외가 성행할 것”이라며 “정식 학교보다 방과 후 교육형태로 다양한 교육을 시키는게 바람직하다”고 밝혀 교육부와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존 과학고와 영재학교의 관계 재정립도 어려운 숙제의 하나. 우수 학생들로 구성된 16개 과학고가 있는데 별도로 영재학교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이론도 있다. 과학고들은 자신 학교를 영재학교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한성과학고 임장규교장은 “과학고 입학생은 중학교 성적이 상위 1%에 드는 우수학생”이라며 “내신 불이익 때문에 학생들이 자퇴하는 등 획일적인 입시제도로 과학고의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영재학교를 졸업한 인재들을 대학에서 지속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연계교육을 마련하고 영재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전문지식을 갖추고 120시간 이상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교사 연수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교육부 오승현 조정2과장은 “한국교육개발원이 중심이 돼 우선 올해 120명, 내년에 300명을 교육할 계획이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신방학中목창수 교장

"1학년 영재학급 추진 방과후-방학이용 교육"

“공교육에서 ‘영재교육’이란 새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영재교육에 대한 성공적인 모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 1월 ‘영재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돼 1학년 과정에 영재학급을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는 서울 신방학중 목창수 교장(54·사진)은 “영재학급은 평준화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방법의 하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신방학중은 방과 후 프로그램 형태로 영재학급을 운영할 계획. 교내에서 수학 과학 등 분야에 영재성이 있는 1학년생 20여명을 뽑고 북부교육청 관내 인근 7개 중학교에서 1, 2명씩 추천받아 30여명을 5월부터 가르칠 예정이다.

목교장은 “지능지수(IQ)와 창의력 검사를 통해 대상자를 선발 중”이라며 “수업이 끝난 오후 3시반부터 2시간씩 1주일에 3일간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전산 분야를 가르치고 방학 때 집중적으로 교육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영재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예산 부족.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 전문가를 초빙해 교사 연수를 하고 별도 연구팀도 만들었다. 연간 예산 2000만원은 턱없이 부족해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해 사용할 계획이다.

목교장은 “미국 영재학교들도 직접 방문하고 자료를 연구했다”면서 “보통교육에서 요구되는 기본 지식의 바탕이 있어야 창의성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목교장은 “평준화 체제에서 영재성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머리좋은 문제아’로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양한 영재교육 과정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교장은 85년 당시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로 서울에서 과학고 2개교를 만든 실무 책임자로 일한 ‘노하우’가 있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조석희(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장)

"대학과의 연계교육 통해 창의성 계발 초점맞춰야"

영재성은 예리한 칼날과 같다. 많은 영재들을 진단하고 상담했던 한 소아정신과 의사는 “우리나라에서 영재아를 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말했다. 타고난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제대로 계발하지 못하면 ‘문제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영재성이 생산적 방향으로 계발되면 10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초중고생 영재들이 영재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육에 지쳐 비생산적인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본인과 사회 모두에게 큰 손실이다.

영재교육 체계는 피라미드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재의 나이 능력 수준별로 교육기관의 종류와 수를 달리하는 것이다.

피라미드 아래에 속하는 영재교육원과 영재학급은 비교적 어린 학생들의 영재성 진단과 발굴에 중점을 두고 윗부분에 속하는 영재학교는 발굴된 영재성을 계발하는데 역점을 두는 방식이다.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은 많은 학생들이 영재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규 수업보다 특별활동 형태가 바람직하다. 영재학교는 소수 정예를 원칙으로 발굴된 특수 영재들에게 집중적이고 도전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영재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 교육과의 연계다. 대학들도 영재교육 과정을 반영한 대입 전형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특수 재능을 가진 고교생에 대해 선진국이나 국내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형태든 영재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창의성 계발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은 학생들이 학습의 주제, 내용,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개방적’인 교육 체제 속에서 활동과 사고과정, 탐구과정을 중시해야만 길러질 수 있다.

영재판별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몇 시간의 판별검사로 창의력이 있는 영재를 발굴하기는 어렵다. 창의적인 업적은 독특한 아이디어뿐 아니라 과제를 끝까지 풀어내는 끈기와 집착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은 능력 수준과 관심은 다르기 마련인데 우리는 오랫동안 영재들을 보통 아이와 똑같이 취급해 문제아로 만들어왔다. 반대로 보통 아이를 영재로 ‘만들려는’ 어리석은 학부모들도 많다. 영재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억지 교육은 평범하지만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특성에 가장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잠재력이 최대로 발휘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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