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덴마크/150년 역사 사립 '프리스쿨'制

  • 입력 2001년 5월 28일 18시 21분


호브로학교 학생들이 수업 시작전 강당에 모여교사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
호브로학교 학생들이 수업 시작전 강당에 모여
교사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앨런 단토프트와 에스터 델프는 부부 교사다. 이들은 덴마크 호브로시에서 14년째 호브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8학년까지 전교생 70명에 교장인 단토프트씨 부부를 포함해 교사는 6명. 학교라기보다 대가족에 가깝다.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고 우는 거예요. 생각 끝에 ‘우리들’의 학교를 시작하기로 했지요.” 기숙학교 교사이던 단토프트 교장은 학교를 그만두고 뜻을 같이 하는 학부모들을 모았다. 은행 지점장이 살던 방 6개짜리 집을 빌려 학교 건물로 개조했다. 침실은 교실과 요리 미술 실습장으로 바뀌고 부엌은 화장실이 됐다. 차고는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로 꾸몄다. 오크나무를 잘라 기둥을 만들고 새끼줄에 폐타이어를 매달아 정원에 그네를 만들었다.》

건물을 개조하고 청소하고 장식하고 정원을 가꾸는데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학부모들이 2000시간에 걸쳐 일했다. ‘8’자가 4번 겹치는 덴마크식 길일(吉日)인 1988년 8월 8일에 개교했다. 개교 당시 학생 은 20명, 교사는 단토프트씨 부부.

개교할 때 단토프트 교장의 주머니에는 한푼도 없었다. 은행에서 21만크로네(약 3500만원)를 대출받아 학교 건물을 빌렸으며 그 뒤 건물을 한 채 더 짓느라 350만크로네를 더 빌렸다. 모두 30년 상환 조건.

“덴마크에서는 누구나 학교를 세워 자기 뜻대로 학교를 운영할 자유가 있습니다. 운영자가 진심으로 학교를 운영할 의지가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은행도 쉽게 금고 문을 열어주죠.”

▼글 싣는 순서▼

-2부 다양성이 경쟁력-

1. 한국
2. 독일
3. 프랑스
4. 덴마크
5. 미국
6. 좌담

▽의무교육이 의무취학은 아니다〓덴마크에서는 7세부터 15세까지 초중학교 과정 9년이 의무교육 기간이다. 전체 인구 530만명 가운데 60만∼70만명이 의무교육 대상 연령 아이들이다.

그러나 의무교육(compulsory education)이 의무취학(compulsory schooling)은 아니다. 7세부터 15세까지는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따르는 학교에 다닐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생 선발에서 교과운영 교사채용까지 자율권을 갖는 사립학교에 다니거나 아니면 뜻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학교를 세울 수도 있다.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립학교를 ‘프리스쿨(free school)’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무교육 대상 학생들 가운데 87%가 공립에, 13%가 프리스쿨에 다닌다. 덴마크의 프리스쿨은 1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프리스쿨 대부분이 부부가 운영하는 학생수 100명 안팎의 조그만 학교다. 정부는 학생수가 25명 이상이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규모가 작으니 학부모들의 참여도도 높다. 학부모들은 수업을 참관하고 교사들과 수업 운영에 관해 상의할 뿐만 아니라 교사 채용에서 학교 건물 수리까지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하고 힘을 보탠다. 학교에서 교실 장식이나 페인트칠 등 필요한 일을 적어 놓으면 학부모들은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학교를 스스로 가꾼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향인 오덴세에서 128년 전 설립된 린델서 프리스쿨은 학생수 145명의 작은 학교다.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4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 그래도 학생수를 늘리지 않는다. 가정 같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배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시험 부담 없이 자유롭게 배운다〓덴마크의 프리스쿨은 전통적으로 시험과 성적표가 없다.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라는 뜻에서다. 교육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 운영할 경우 교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고려됐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원하는 학생들에 한해 시험을 치른다. 실제는 학부모들이 원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시험을 본다.

6∼7학년까지는 구술시험을, 그 이후에는 필기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점수화한다. 학교를 마칠 때 졸업장과 함께 주는 성적표는 에세이 형식의 서술형이다.

▽수업료는 가족 단위로 청구〓사립학교는 수업료가 비싸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입학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월급의 40%를 세금으로 떼 가는 덴마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공립은 물론 무상 교육이다. 사립은 학부모가 소득 수준에 따라 전체 수업료의 17∼25%만 내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한다.

또 가족 단위로 수업료를 청구한다. 자녀가 2명 이상이어도 1명분 학비만 내면 된다. 프리스쿨의 한달 수업료는 코펜하겐 같은 대도시는 가족당 1000크로네(약 16만6000원), 지방도시는 400크로네(약 6만6000원) 안팎으로 대도시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떠오르는 '애프터 스쿨'▼

스칼스 애프터 스쿨 학생들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식단짜기 배식하기 설거지하기 등 모든 일을 학생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해결한다.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하는 린 크리스티안센(16)은 중학교 마지막 학년인 10학년을 스칼스시에 있는 기숙학교 스칼스 애프터 스쿨에서 보내고 있다. 6시반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오후 5시경 수업이 끝나면 각종 동아리 활동을 즐긴다. 친구 3명과 방을 함께 쓴다.

“고교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로 했어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법도 배우고 있어요. 혼자 생활하니까 자신감이나 독립심도 갖게 됐고요.”

크리스티안센양이 다니는 중학교 과정의 기숙사 학교 ‘애프터 스쿨’은 덴마크에서 급성장하는 교육 산업이다.

덴마크는 초중학교 과정이 한 학교에서 이뤄진다. 학생들은 9∼10년 동안 한 학교에서 지내다 보면 뭔가 ‘변화’를 꿈꾼다. 또 사춘기에 이유없는 반항심이 생길 때여서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다. 이 때문에 8∼10학년 중 1년 정도를 애프터 스쿨에서 보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덴마크에는 235개 애프터 스쿨에 2만1500명이 다니고 있다. 학생들 중 62%는 10학년, 30%가 9학년, 나머지 8% 정도가 8학년이다. 전교생이 평균 85명이며 전부 남녀 공학.

사립이기 때문에 프리스쿨처럼 교과과정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자율로 결정한다. 애프터스쿨 가운데 15% 정도는 음악 연극 예술 체육교육 등을 특화한 학교들이고 학습장애아를 위한 학교가 14%, 종교학교가 22% 정도 된다. 나머지 36%는 진보적 교육 철학자 그룬트비와 콜의 전통을 따르는 학교들이다. 초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가기 때문에 ‘애프터’ 스쿨이라고 부른다.

▼초중고 졸업시험 문제를 보니…▼

덴마크 교육부는 매년 초중학교 졸업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 시험지는 과목별로 A4 용지 10쪽 가량의 컬러 팸플릿 형태를 띠고 있다. 사진과 삽화 등을 곁들여 글을 소개한 뒤 문제를 내는 식이다.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교과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의 창의력과 종합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인터넷이나 대중문화 등 학생들의 일상적인 관심사에서 소재를 뽑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국어(덴마크어)시험 문제는 모두 6가지. 이 중 1개를 골라 답하는 시험이다.

1. (신문사에서 독자들에게 올해의 주제에 관해 써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올해 가장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 장소를 선정하고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시오.

2. (시를 소개한 뒤) 덴마크와 세계에 관한 생각을 서술하시오.

3.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긴 머리 소녀의 사진을 제시한 뒤) 당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쓰시오.

4.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그림을 제시한 뒤) 이 남자의 처지가 돼 이 남자의 일생에 대해 쓰시오.

5. (컴퓨터 채팅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어머니 편지를 보여준 뒤)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이 편지에 답장을 쓰시오.

6. (도쿄와 칠레에서 온 청소년 도모코와 페드로의 인터뷰 기사를 보여준 뒤) 이들이 덴마크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의견을 담아 이들에게 편지를 쓰시오.

지난해 수학문제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프랑스로 스키를 타러 가는 소년 라스무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22문제가 출제됐다.

△(스키잠바와 바지 스키부츠 등 장비의 가격을 제시한 뒤) 라스무스에게 2700크로네가 있는데 잠바 바지 슈즈는 각각 얼마짜리를 살 수 있는가 △프랑스에서는 1475프랑에 살 수 있는데 환율이 113.39일 경우 각각의 장비를 얼마에 살 수 있는가 △(교통편과 숙박시설 리프트 이용료 등이 각기 다른 3가지 상품을 제시한 뒤) 8일간 스키여행을 떠날 경우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경제적인가 △스키학교에 등록할 경우 참가자 수, 강의료 등을 감안해 몇 명이 가는 게 좋은가 등등.

99년 영어 시험문제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영어단어인 ‘쿨(cool)’에 관한 문제가 나왔다. ‘쿨하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쿨’하게 보이고 행동하고 말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학생들은 이 같은 3가지 문제에 영어로 대답하도록 요구받았다.

<코펜하겐오덴세호브로〓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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