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영국/암기보다 철저한 이해중심 학습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27분


《교사는 교육의 핵심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도움으로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각국은 교사의 자질 향상을 교육개혁의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교사는 창조적 전문가일 것을 요구받고 있다. 세계 각국이 어떻게 교사의 전문화를 꾀하고 있는지를 살피며 우리의 현실을 조명해본다.》

영국은 활발히 교육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교민 주부들의 눈을 통해 영국의 교사와 교육환경을 살펴본다.눈에 비친 영국의 교사와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도록 발언자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여은희씨(46)는 16년간 영국에 살면서 케임브리지대에서 현대언어를 전공하는 이현영양(19)과 상엽군(15)을 키웠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휴직 중인 정명희씨(41)는 영국에서 2년반 동안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아들 김상수군(14)을 키우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도 3년간 산 경험이 있다. 신인영씨(40)는 미국에서 1년간, 영국에서 5년간 살면서 유인환군(13)과 은경양(12)을 키우고 있다.

▽열성적인 교장

-한국의 교장과 영국의 교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영국 교장은 학습지도에도 참여한다. 아이가 영국에 온 지 몇 달만에 수업시간에 영어책을 읽겠다고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아이는 이 일로 ‘칭찬 점수 10점’을 받았다. 대개 4, 5점이 일반적인데 교사가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10점을 준 것 같다. 매일 점수가 높은 학생은 교장실로 가 칭찬을 받는다. 교장은 단순히 칭찬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 앞에서 책을 다시 읽어보게 하더라.

-교장이 크리켓 게임을 직접 지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매일 방과 후 오후 3시반부터 5시까지 학생들을 지도하고 뒷정리까지 모두 혼자 하더라. 지역에서 체육대회를 할 때는 교장이 육상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하는 걸 봤다. 한국에서는 체육교사 학년주임 등이 있는데 교장이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겠느냐.

-아이가 입학할 때 교장이 부모와 아이를 데리고 학교의 이곳 저곳을 직접 안내하며 자세히 설명해주더라. 이틀 뒤 담임 교사를 만났는데 역시 부모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학교를 소개했다. 교장이 매우 친절하고 적극적이다.

▼글 싣는 순서▼

4부 교사 자질 높여라
1. 교포 학부모 좌담
2. 교사양성
3. 경영자 교장
4. 교사연수
5. 교권확보

☞ '교육은 희망이다' 연재 기사모음

▽계획적인 교과활동

-교사들도 열심히 일한다. 학기 말에 교사가 학부모와 만나는 ‘오프닝 데이’가 있다. 대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부모가 편한 시간을 예약해 교사를 만난다. 교사는 아이의 한 학기분 공책을 꺼내놓고 학습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영국은 3학기제이니까 적어도 한해에 세 번은 교사와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아이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있다.

-교과활동이 매우 계획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면 튜터 왕조에 대해 배울 때는 이와 관련된 현장을 견학해 교육효과를 높인다.

-한 역사 교사가 한국대사관에 “1년 뒤 한국대사관을 방문하고 싶다”고 ‘예약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이 교사는 냉전에 대해 공부할 때 학생들과 세계적으로 냉전지대에 속하는 한국의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교사가 1년 뒤 학습활동에 대해 미리 ‘현장 학습 장소’를 물색한 것이었다.

▽교사는 전문가

-교사들은 철저히 이해 중심으로 가르친다. 학생들은 원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아이의 지리시간 학습 자료가 모두 그림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든 지형을 그림으로 표시하며 놀이하듯 배우더라. 영국축구팀을 모두 나열해 놓고 이 축구팀이 어느 도시에 있는지를 알아내 도시 위치에 축구팀의 그림을 붙이는 식이다. 이렇게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국의 기후에 대해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에 북서풍이 불며…’라고 배웠다. 영국에서는 지역별로 기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세하게 배운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수행평가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겠더라.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았는데 과목당 A4용지 크기의 큰 공책 두 권이 가득 차더라. 공책만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공부했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미술 교사가 아이에게 인상파 화가에 대해 조사하라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그 다음에 아이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화가를 고르라고 했다. 이어 이 화가의 그림을 하나 고르게 한 뒤 그림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그리게 하는 숙제를 내줬다. 교사는 아이의 그림을 살펴본 뒤 붓의 터치법을 가르쳐주고 이 터치법에 따라 그림을 4등분해서 그리게 하더라. 마지막 단계로 아이가 이 그림 전체를 모작할 때쯤 한 학기가 끝나더라.

-교사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계획을 세우고 학생들에게 방법을 가르치고 진행과정을 보며 조언을 하고 나머지는 학생이 모두 하게 하는 식이다.

-아이가 한국 등 3개국에서 공립학교를 다녔다. 한국에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준비물을 갖추지 못했다고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 물론 모든 한국 선생님이 때리면서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 교사는 친구 같은 선생님, 인간적인 선생님, 전문가 선생님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교사가 되려면 엄격한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책에 나온 것을 달달 외워서 보는 시험이 아니냐. 이 같은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교사로서 전문가적인 자질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학부모 학습참여 유도

-영국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량도 많다. 공부가 토론과 보고서 중심이어서 모두 학생 스스로 해야 한다. 한국처럼 학원 강사가 숙제를 도와줄 수도 없고 참고서를 베낄 수도 없다. 모든 과제를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을 뒤져야 할 수 있다.

-한국 중고교생의 공부시간은 영국 학생들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분량은 영국 학생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은 국가수준 학력고사를 치른다. 과학 수학 문학 세 과목을 치르며 과학과 수학은 모두 A형과 B형으로 나뉜다. 하나의 유형마다 문제지의 분량이 A4 용지 양면 15장이다. 문학 첫 시험문제의 지문이 A4 용지 3쪽이더라. 깜짝 놀랐다.

-중학교부터는 매일 평균 3개 과목씩 숙제를 내준다. 전부 연구과제다. 수업시간에 방법을 가르치고 공부는 집에서 학생이 한다. 아이가 영국 학생처럼 영어에 능숙하지만 대개 오후 10시나 11시쯤이면 공부가 끝나더라.

-아이들이 중고교 때 배우는 것을 지켜보면 내가 대학 시절에 저런 수준의 보고서를 썼나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교사들은 학부모를 학습에 참여시킨다. 매일 공책에 평가를 하고 반드시 학부모가 확인하도록 한다. 부모가 자녀의 학습상황을 점검할 수밖에 없다. 또 숙제가 대부분 연구과제나 조사여서 부모가 아이들을 도와줄 수밖에 없다.

-영국 중산층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게임하듯 공부한다. 이 곳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랄 때 이 같이 공부했기 때문에 그 방식을 잘 알고 있어 지도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한국 학부모들은 이 같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영국에서도 교육이 가장 중요한 이슈다. 교통 교육 의료 등은 공공서비스의 대표적인 사안으로서 선거 때마다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다. 교육이 중요하지 않은 나라는 없는 것 같다.

▽교사의 권위

-아이를 일단 학교에 맡기는 부모는 아이의 진로 등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학교는 ‘타깃 세팅 데이(target setting day)’를 마련해 교사와 학생이 진로에 대해 상담한다. 학생이 정한 진로에 따라 무엇을 전공할 것인지, 어떤 과목을 들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교사는 학생들의 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서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추천서를 쓰게된다. 이 추천서는 매우 중요하다. 캠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에 갈 정도의 학생은 대개 대학입학학력고사(A-level test)에서 A등급을 받는다. 대학은 추천서를 보고 학생을 선발하기 마련이다.

-추천서가 허위임이 드러나면 해당 교사의 추천서는 모든 대학이 믿지 않게 된다. 교사에게 추천서를 잘 써 달라고 부탁할 여지도 없다. 또 추천서를 교사가 직접 작성해 밀봉해서 보내기 때문에 학부모나 학생이 어떤 내용인지 모른다. 교사의 권위가 드러난다.

-교사나 직장인이나 대학에서 A학점을 받았느냐 B학점을 받았느냐에 따라 ‘출발점(연봉)’이 다르다. 또 취업 인터뷰 때 대학입학학력고사 성적을 묻기도 한다. 이 때문에 중산층 학생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생활하며 교사의 지시에 잘 따를 수밖에 없다.

▽투명한 학교 재정

-돈 쓰임새가 투명한 것도 인상적이다. 학부모들이 바자회를 열어 학교에 수천만원씩을 지원한다. 3개월마다 뉴스레터가 온다. 수익금을 어떻게 썼다는 자세한 명세서가 나온다.

-또 매년 학기가 끝나면 학교에서 개인 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어 구입을 권한다. 이 때 사진 값의 30%는 학교기금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대부분 학부모가 기꺼이 산다.

-네덜란드에서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선물은 대개 2만원이 넘지 않는 소품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선물을 열어보는 데 돈이나 값진 것을 넣을 수도 없다. 또 좋은 선물을 했다고 해서 ‘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투명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국 학교예산의 80% 가량이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이고 20% 가량은 운영비다. 많은 학교가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학부모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다. 이 기부금을 잘 모으고 활용하는 교장이 훌륭한 교장이다. 학교 재정이 투명하기 때문에 기부금 때문에 말썽이 생기지 않는다.

▼한국 교육환경은 어떤가▼

한국 교사들은 학부모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교사의 50.5%, 학생의 22.6%가 교사의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교사의 50.2%가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고 봤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교직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편(51.2%)이라는 98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와 거의 일치한다.

교사들의 이 같은 인식은 정년단축 등으로 인한 교직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피해의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에 따르면 학교 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에서 초등교육은 양호하다고 평가한 반면 중학교와 인문계 실업계 고교에 대해서는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한 학부모의 만족도는 46.3%에 불과했다.

‘학생교육과 관련해 학부모와 파트너십을 느낀다’는 문항에 60%의 교원들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교사와 학부모의 단절 관계가 심각했고 이런 현상은 대도시와 고교 교사들에게서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원의 10%만 학부모의 신뢰를 받고 있고 90%는 신뢰관계가 ‘보통 이하’라고 대답했다. 남자보다는 여자 교사, 평교사, 대도시 교사, 중고교 교사들에 대한 불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녀 문제로 교사와 상담하고 싶은 학부모는 22%에 불과했고 상담을 꺼리는 학부모가 40%나 되는 등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됐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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