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팔크중간학교 만프레드 팀페 교장은 “지난해 기초학교(초등학교에 해당하는 4년제 학교)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고 진학한 12명의 성적이 좋지 않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독일은 교사가 기초학교의 성취도에 따라 중등학교인 김나지움 중간학교 보통학교 등의 입학 자격을 평가하지만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도 존중하기 때문에 이들은 중간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들중 3명은 이미 학교를 떠났으며 3, 4명은 곧 자퇴할 예정이다.
팀페 교장은 “교사들의 평가는 대부분 들어 맞는다”면서 “나머지 학생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팀페 교장은 이들 가운데 다니엘(11)의 기초학교 학교생활기록부를 보여줬다. 작업능력 2점, 사회성 2점, 독일어 4점,기초지식 2점, 수학 4점, 미술 2점, 음악 3점, 체육 2점, 모국어 2점이었다. 점수는1∼5점으로 주어지며 1점이 가장 높은 점수다. 2점 이상을 받아야 가장 높은 수준의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에 진학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독일어와 수학의 점수가 중요하다. 이 학생부에는 ‘다니엘은 직물작업을 잘하고 컴퓨터의 기초지식을 지니고 있다. 부끄러움을 타기 때문에 발표는 활발하지 않지만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디어가 반짝이며 즉흥적인 표현력이 좋으며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쓰여있었다. 다니엘은 보통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성적이지만 부모가 우겨서 중간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업성과가 좋지 않아 곧 자퇴할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 |
4부 교사 자질 높여라 1. 교포 학부모 좌담 2. 교사양성 3. 경영자 교장 4. 교사연수 5. 교권확보 |
독일은 어떤 종류의 중등학교에 가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진로가 크게 좌우된다. 보통학교 학생은 생활에 근접한 교육을 받아 기술 상업 사회 수공업 농업 분야의 직업교육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간학교는 직업교육의 기초와 상급학교에 진학할 있는 기초지식을 가르친다. 김나지움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수학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이 때문에 기초학교 졸업반 학생(10세)에 대한 교사들의 평가가 일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평가에 걸리는 시간은 학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사람당 1∼10분 정도로 짧다.
기초학교 교사들은 담임 교사 주재로 졸업반 학생들에 대한 평가회의를 연다. 이 때 학생부가 기초자료가 된다. 학생부는 부모의 입학신청서부터 학생이 입학할 때 학업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그린 그림, 각 학년의 성적 등 자세한 자료를 담고 있다. 교사들은 성적을 먼저 본다. 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면 숙제 등 학습태도와 사회성 작업능력 등을 논의해 결정한다.
물론 이 결정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부모가 이의를 제기하면 교사는 부모와 상담한다. 부모는 자녀를 교사가 권한 학교가 아닌 다른 중등학교에 진학시킬 수 있다. 교사의 결정을 무시하고 다른 중등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일정 기간(대개 6개월)이 지난 뒤 중등학교 교사들로부터 학업능력을 다시 평가받는다.
불과 몇분안에 학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독일 교사들의 권위는 전문성에 기초하고 있다. 어린이에 대한 애정과 이해는 기본이며 교육학적 심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학생들의 발달상황을 자세히 관찰해 이를 기록으로 남긴다. 독일에서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회사원 김창희씨(45)는 “학교 통지서를 보면 교사가 아이를 매우 유심히 지켜봤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교사의 진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는 예전보다 많아졌지만 대다수 학부모는 교사들의 평가에 따른다. 학부모들이 교사의 결정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권위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내리는 결정의 타당성만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교사는 결정을 내리기 전 학생 학부모와 교육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사들은 진로 결정을 하기 전에 학부모들에게 중등학교에 대한 설명회를 연다. 중등학교교육의 특성과 향후 진로, 적합한 수학능력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다. 학생들은 각종 중등학교를 방문해 수업이나 교육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할 기회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학업능력 등을 고려해 어떤 학교에 진학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을 처벌하는데도 반드시 부모가 참여한다. 팔크중간학교는 숙제를 하지 않으면 교사가 학부모에게 편지를 써서 자녀를 지도하도록 부탁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을 학교에 남겨 숙제를 하도록 강제한다.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학부모에게 연락하고 학부모 대표, 학생 대표, 폭력 당사자가 참여하는 교사회의를 열어 처벌의 수위를 정한다. 폭력을 행사한 학생이 개선될 기미가 없으면 반을 옮기거나 각종 학교행사에 참가할 수 없도록 단계적으로 제재한다. 학교의 일방적인 처벌은 당사자의 반발을 불러 교육적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독일은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고 보호하며 교육하고 평가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다. 교사는 또 학생의 집을 방문해 학부모와 상담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교육활동과 관련된 사안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학교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기구를 구성해 운영하도록 돼있다. 학부모회는 반별 학년별 학교별로 구성돼 있으며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하기도 한다.
학교나 교사의 결정은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상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권위를 갖게 된다. 교사의 사회적 지위나 법적인 권리를 의미하는 교권은 약화되더라도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데 필요한 교사의 권위를 의미하는 교권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교사의 사회적 지위는 많이 약화되고 있다. 독일 쿠어퓌어스트 프리드리히 김나지움 루돌프 디트리히 교사는 “과거 교사는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보수에 비해 게으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교육청은 교사 모집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영국 미국 등지에서도 교사의 지위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영국은 교육개혁에 피로감을 느끼는 교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은 교사 지원자가 줄어들어 외국에서 교사를 ‘수입’할 정도다. 하지만 교사가 학교에서 가지는 지위는 여전하다.미국 로스앤젤레스 써드 스트리트 초등학교 수지 오 교장은 “교육은 학생 교사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야 가능하다”면서 “교사는 늘 배우는 자세로 노력해야 하며 학부모는 교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獨 기초-중간학교 교사 소르크씨▼
“학생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교사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씁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기초학교와 중간학교 교사인 티나 소르크(26·여)는 “공동의 규율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인정받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소르크씨는 기초학교와 중간학교 등 3개교를 오가며2∼9학년생에게 전공인 체육과 부전공인 독일어 영어 등을 가르친다. 이 때문에 교사 경력은 짧지만 코흘리개부터 어른티가 나는 학생들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혼 가정이나 아이를 멋대로 키우는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학교의 규정을 지켜야 학생들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 오히려 편안하게 여기고 학교를 원활히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교사들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나라다. 하지만 60년대부터 분위기가 변했다. 교사들이 강압적인 수단에 의존하기 보다 학생과 교사의 민주적인 관계를 수립하는데 노력하기 시작했다.
소르크씨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인간적인 교사를 원한다”면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상담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부모들은 교사에게 자녀 교육법에 대해 상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교사와 학부모의 신뢰가 잘 유지되고 있다”면서 “학생 평가에서 교사의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할 수 있지만 세세한 규정이 있어 대체로 이 규정에 따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학생 학부모 등과 원활히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교사의 권위는 생겨난다”고 말했다.
▼한국의 현실은…▼
“아이들을 지도하기 힘들어요. 도대체 통제가 되지 않아요. 교사의 권위는 사라진지 오래죠.”
서울 J중 김모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56.3%가 학생 지도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체벌금지 등으로 인해 83.6%가 학생 통솔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사회의 비교육적 환경’(36.7%)을 제외하면 ‘교사의 권위 실추’(18.2%)를 학생지도의 첫 번째 애로점으로 꼽았다. 교사의 50.3%가 학부모의 간섭으로 좌절감을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45.9%가 학부모가 교사를 신뢰하고 존경해줄 것을 바랬다.
전문가들은 교사의 권위를 교과목을 가르치는 ‘지적인 권위’와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지도하는 ‘도덕적 권위’로 나누고 이 권위에 따르는 권리와 책임을 강조한다.
한양대 정진곤 교수(교육학)는 “교사가 권위를 잃으면 처벌 등 강압적 수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처벌마저 수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자신의 뜻대로 운영할 수 있는 ‘교육적 자율성’이 교권의 핵심이라는 견해도 있다. 교사와 학원 강사가 전국적으로 동일한 교과와 내용을 가르치는 상황에서 교사가 지적인 권위를 유지하기 힘들다. 한국교육개발원 이혜영 박사는 “교사가 교과목을 가르치는데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권위의 절반은 확보한 셈”이라며 “학생 개개인에 맞춘 교과과정의 개별화 다양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신일 교수(교육학)는 “학습권을 지닌 학생과 학생의 대리인인 부모의 권리를 인정해야 교사가 교육적 권위주의에 빠지지 않고 권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교칙을 만드는데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살아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충남 논산시 대건고 박용서 교감은 “학생을 인격체로 대해야 학생들이 교사를 믿고 따르게 된다”면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지도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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