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PC가 교과서" 일반수업도 인터넷 활용

  • 입력 2001년 12월 21일 17시 23분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은 교육 분야에도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시간적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면서 ICT활용 교육이 교실 깊숙히 들어와 있다. 정보화기술을 활용해 학습 효과를 높이려는 선진국의 정보화 교육을 통해 앞으로 우리의 학교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

“오늘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자기소개서를 직접 써보세요. 사진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불러와서 첨부하면 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드스트리트 초등학교 3학년 영어작문 시간. 영어 교사는 자기소개서 작성법과 자기소개서의 구성 요소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영어 작문 시간이지만 일주일에 한번 컴퓨터 30대와 프린터 15대가 비치된 전산실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교사의 설명이 끝나자 20여명의 아이들은 컴퓨터에 설치된 어린이용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소개서 내용은 다 썼는데 사진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코타 마시아스군(8)이 사진 첨부 방법을 몰라 쩔쩔매자 전산담당 교사가 다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사진을 불러오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학생들은 20여명에 불과하지만 교사는 영어교사, 전산담당 교사, 학부모 보조교사 등 3명이나 됐다. 아이들은 컴퓨터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프린터로 인쇄한 뒤 각자 발표하고 교사의 지도를 받았다.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교육은 컴퓨터를 이용한 학생들의 학습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져 학교 교육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책으로된 교과서 뿐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텟도 이미 중요한 교재가 됐다.

▽컴퓨터가 교과서〓미국 캘리포니아주 초중고교의 80% 가량은 각 교실마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4, 5대와 프린터를 갖추고 수업시간에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야외 체험학습 때는 학생들은 학교에 비치된 가정용 전화기 크기의 소형 워드프로세서를 들고 나가 보고서를 스스로 작성하기도 한다.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내외여서 4, 5대의 컴퓨터로도 학생들이 직접 실습해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클레어 릴리엔탈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영어와 생물 수업 시간 등에 컴퓨터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교사가 수업 내용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컴퓨터를 통해 직접 실습하는 방식이다. 알파벳을 배우는 학생들은 컴퓨터에서 ‘A’로 시작되는 ‘Alligator(악어)’를 찾고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악어를 직접 그려본 뒤 발음을 스스로 녹음해 본다. 인체에 대해 배우는 시간에는 직접 컴퓨터에서 인체의 모습에 마우스를 대고 뼈와 장기(臟器)의 기능을 배운다.

로스앤젤레스 서드스트리트 초등학교 3학년 교사 빌 머켈슨씨(54)는 “교사가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면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교육 효과가 크지 않다”며 “학생들이 직접 컴퓨터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 ICT 교육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눈높이 교육과정〓미국의 ICT 교육은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수업시간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하는 교육 방법을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하 저학년은 어린이용 컴퓨터 그래픽프로그램을 통해 키보드와 워드프로세서에 친숙해지는 훈련을 한다.

4학년 이상 고학년은 단순한 그래픽 프로그램을 벗어나 파워포인트로 직접 슬라이드를 제작하고 연구 과제를 수행한다. ‘우주’를 배우기 전에 인터넷 등으로 직접 조사해 우주에 관한 보고서를 출력한 뒤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식이다. 중고교 학생은 수업시간에 파워포인트와 엑셀 등 고급 응용 프로그램과 인터넷을 활용해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스스로 탐구한다.

▽다양한 교육 지원〓미국 학교는 컴퓨터와 학교 전산망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잔버로우 공립중학교는 독서증진프로그램(ARP)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홈페이지에서 도서관의 책을 검색하고 대출한다. 책을 읽은 학생들은 학교 홈페이지에서 읽은 책에 관한 간단한 퀴즈를 푼다. 교사들은 이 퀴즈 결과를 성적에 반영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책을 읽도록 지도한다.

도서관 사서 탐 리(30)씨는 “독서증진프로그램이 도입된 뒤 한달 평균 800여권이던 도서 대출량이 3배로 껑충 뛰었다”며 “학생들이 책을 읽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학교별로 독서증진프로그램 외에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수학과목의 심화학습을 위한 수학증진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가능한 것은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다양하게 개발 보급돼 있고 학교와 교사들이 큰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들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월 사용료가 2000달러인 유료 교육용 사이트 10여개에 무료로 접속할 수 있다. 교육용 소프트웨어도 지역교육청이 일괄 구입해 보급하기 때문에 저렴하다. 이렇게 하면 500달러 짜리 교육용 소프트웨어도 35달러에 사용할 수 있다.

<로스엔젤레스〓박용기자>parky@donga.com

▼샌프란시스코교육위 와인스위원장▼

“컴퓨터가 없는 가난한 집 아이라고 정보화에서 소외된다면 미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학교 정보화가 정보격차를 해소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 질 와인스(54·여) 위원장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정보격차가 교육 불평등과 직결되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교육구는 유치원부터 고교생까지 학생이 6만2000여명이나 되지만 백인 학생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중국계가 30%로 가장 많고 라틴계 25% 흑인계 15% 등으로 소수인종의 비율이 높아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빈부격차가 큰 편이다.

“학교에 학생 5명당 컴퓨터 1대를 확보할 계획입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다룰 수 없는 학생들도 학교에서 마음껏 컴퓨터를 하고 다룰 수 있게 될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교육구는 2년 전부터 교육 정보화에 힘써 현재 관내 학교의 절반이 교실 내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학생들이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전산실에 집중된 컴퓨터를 교실로 분산시켰다. 교육구 곳곳에 전산실을 갖춘 ‘커뮤니티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e메일 등을 통해 교사 학부모 학생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질문할 수 있고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해 상담할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교육구 내에 등록된 5만여개의 E메일 주소 중 4만2000개를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한 흑인 중학생이 스페인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스페인 역사에 대한 자료를 스스로 찾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보고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그는 “정보통신 기술이 학교에 도입되면서 학생들의 학습 효과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며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교육구 학생의 95%가 캘리포니아주 학력평가를 통과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교육부는 고등학교 우수반(AP) 프로그램을 인터넷에 개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와인스 위원장은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교육 방법이 다양해졌지만 학교 수업을 전적으로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역시 교육은 교사가 하는 것인 만큼 정보통신 기술은 필요에 따라 조화롭게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박용기자>parky@donga.com

▼학무보들 자원봉사로 전산교육 도와▼

-“북극 여우가 사는 곳은 밀림, 사막, 눈 덮인 산 중 어느 곳일까?”

4살박이 딸 제인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과학박물관을 찾은 크리스 루이스씨(30·여)는 박물관 전시실에 비치된 과학용 프로그램으로 딸에게 북극 여우에 대해 설명했다. 제인이 ‘눈 덮인 산’을 클릭해 ‘딩동댕’ 신호음을 듣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박물관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나파지역에 사는 루이스씨는 한달에 두번 정도 딸과 함께 박물관을 찾는다.

루이스씨는 “어린 딸이 박물관 안내문을 혼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애니메이션과 효과음을 갖춘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이 다양해 딱딱한 과학 공부도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정보화 교육에 매우 적극적이다. 컴퓨터를 스스로 다루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거나 아이들과 함께 과학관 등에서 체험학습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컴퓨터 활용 교육을 돕고 전산실을 관리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웹사이트 호스팅 업체에 근무하는 제이슨 멜로리씨(28)도 자신의 컴퓨터공학 전공을 살려 일주일에 2번 보조교사로 학교에서 아이들의 정보화 교육을 돕고 있다.

멜로리씨는 딸 지나(9)가 인터넷에서 음란물 등 불건전 정보에 접속하지 않도록 매일 딸이 사용하는 컴퓨터 로그파일을 확인한다.

그는 “아이들과 집에서 컴퓨터로 음악도 만들고 작문 공부도 함께 한다”면서 “딸도 컴퓨터로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육구의 학교들은 1963년부터 학교자원봉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2000명의 학부모 자원봉사자를 선발해 주 1회 한시간씩 다양한 실무 교육을 진행한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대신해 학교 전산망에 접속해 성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로스앤젤레스 서드스트리트초등학교 수지 오 교장은 “교사들이 정보화수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학부모 등쌀에 견디지 못한다”며 “학부모들이 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하고 전산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는 등 열성을 보여 정보화 교육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너제이〓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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