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일세/'인권선진국'의 주춧돌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27분


23일 ‘국가인권위원회법’ 공포문 서명식이 있었다. 지난달 30일 어렵게 국회를 통과하고 이달 15일 공포된 이 법은 이제 본격 시행단계로 들어갔다. 시민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대해 인권위의 조사대상이 제한돼 있고 조사권도 약해서 실질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하지만 다소 부족하더라도 인권위를 제도화한 것은 인권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인권’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권(人權)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권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빠짐없이 가지고 있고, 또 가져야 할 자연적 권리이다. 즉, 성별, 장애, 빈부 등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부여되어 있는 선천적 권리이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고유권을 말한다. 강조하건대, 인권은 국가보안법 위반자나 양심수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가 직면하는 문제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인권이란 신체의 자유, 노동권 등 기본적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초법적인 권력에 의해 유린되기 일쑤였다.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 역사의 어두운 인권 침해의 현장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막강한 조직의 힘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이제 인권은 소극적인 자유권, 평등권의 차원을 넘어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권리, 문화의 권리, 사회 참여의 균등한 기회보장 등 적극적인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고, 사회의 기능과 형태도 변화해 가면서 인권의 주된 대상은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맞추어질 것이다. 빈곤층, 정치적 신념 때문에 압제를 당했던 사람들, 노동자 등이 사회적 약자로 간주되고 있으나 사실 장애인만큼 약한 사람들도 없다. 교육, 취업, 사회활동 등 모든 면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장애인들의 보호는 인권의 차원에서 가장 기본이자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독립국가가 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며 투쟁하고, 정부를 수립하는 것도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받기 위한 것이다. 인권 보호는 경제 발전보다 우선하는 국가의 최우선 과제이다. 인간답게 잘 살기 위해 경제 발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문제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는 ‘인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탄생은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인권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이 법의 기본정신을 살리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해 간다면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기틀은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이일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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