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종구/선진기술 갈증 독일 통해 풀자

  • 입력 2001년 7월 23일 18시 29분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소재 가운데 산업스파이가 있다. 산업스파이가 다른 나라의 우수한 기술을 훔쳐내 제3국에 되팔거나 악용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옛 소련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서방의 실용기술을 이전받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밀경찰 조직인 KGB를 통해 서구에서 수많은 산업기술 정보를 수집했다. 소련의 산업스파이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가 있다. 1970년대 중반 프랑스의 초음속 항공기 콩코드의 기술을 그대로 모방, 프랑스에서 개최된 항공산업기술 전시회에 출전한 것이다. 이에 경악한 프랑스인들은 러시아가 모방한 초음속기에 ‘콩코드스키’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쩌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부존자원도 부족하고, 기술력도 취약한 만큼 외국의 선진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의 풍토는 기술 정보를 획득하는 데 있어서 편식 성향이 강하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뜻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원하는 기술을 많이 갖고 있지만, 기술 이전에 대해 철저한 대가를 요구한다. 반면에 러시아는 기초기반 기술이 뛰어나지만 상업화는 요원한 상태다. 여기에 비해 유럽, 특히 독일은 기술 이전이 비교적 자유롭고 기술수준도 미국이나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한국 생산기술연구원과 독일 중소기업기술연구소 조합체인 프라운호퍼가 공동출자한 ‘한독공동기술개발센터’가 서울에 개설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독일과의 기술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 사무소는 선진기술에 목말라 하는 국내 중소기업과 연구기관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중소기업과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풀려는 과제의 상당수가 이미 독일에서는 오래 전에 해결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을 싼값에 들여오는 것이 많은 돈을 투자해 개발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크다.

독일 제조업 생산기지의 대다수가 동유럽쪽으로 넘어가면서 싼값에 살 수 있는 생산기술이 많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기회다.

여기에 독일의 민간연구소가 사용처를 찾지 못하고 썩히는 기술이 많은 데 이런 기술도 싸게 매입할 수 있다. 독일에서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기술개발 프로젝트에 공동개발 형식으로 참여해 우리 기술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 수준인 독일의 환경기술을 받아들이면 이 분야에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에서 국제 교류와 협력은 부존자원이 절대 부족한 한국이 기술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다. 따라서 국제협력을 단지 어학이나 인적 접촉에만 국한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세계 속에 당당히 나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폐쇄적이며 수동적인 태도 때문이다.

지난 세기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세기에는 창의적인 국제협력을 통해 세계사의 주역으로 당당히 나서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종구(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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