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은 5월 초 본인에게 보내온 서신에서 ‘한미 두 나라가 공유해도 될 만한 정보를 우리 한국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보장교의 애국적인 마음의 공백을 메워주려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제공한 정보가 미 법원이 적용한 ‘국가기밀’ 수준이라기보다 ‘두 나라가 공유해도 될 만한’ 대외비 수준이라고 밝혔다.
5년 전 로버트 김 사건이 한미간 외교사안으로 비화했을 때 한국 정부의 대응은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서툴렀다. 정보 수혜자로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정부는 정보를 제공받은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을 서둘러 철수시키고 이 사건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로버트 김은 모든 십자가를 혼자 지는 처지가 됐다.
당시 정부는 백방으로 노력해 국제적 관례와 상식으로 볼 때 가혹하기 짝이 없는 9년형의 판결은 나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최소한 한미 우방국 사이에 적성국가 사이에나 있을 수 있는 ‘간첩죄’를 적용하는 것도 막았어야 했다.
정부는 로버트 김의 조기 석방을 호소하는 각계의 서신에 5월21일자 외교통상부장관의 답신을 통해 ‘이 사건은 미국 국민이자 미국 공무원인 김씨가 미국 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서 미국 법정이 유죄판결이라는 사법적 결정을 내린 사안’이라며 ‘정부가 미국 사법부의 결정에 공식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국제법의 기본원칙에 배치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이런 태도 때문에 민간 차원의 구명노력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의 도움도 없이 처절하게 준비한 로버트 김의 항고도 기각돼 자력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제라도 정부는 수수방관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직접 로버트 김의 정치적 사면을 추진해야 한다. 이 사건은 국가 존재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 대내적으로 평가받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군수물자를 다루는 실무책임자들이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보다 못해 정보를 제공한 로버트 김의 애국적 행위가 조국에서마저 외면당한다면 누가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정치인들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미국이 국적인 교포들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애국심을 발휘해 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로버트 김은 정작 그런 뜻에 따라 행동한 자신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이 책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있다.
이제 국정 책임자들은 로버트 김의 정치적 사면을 미 행정부와 의회, 그리고 미 국민에게 전방위적으로 호소해야 한다. 10월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신기섭(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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