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싸다’라는 표현이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저주스러운 말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이런 말을 들어도 ‘쌀’ 그런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아파서 신음하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쓸 수 있을까. 단언컨대 이런 말을 들어야 할 환자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에이즈는 당신에게 ‘남의 일’처럼 들릴지 모른다. 정부 차원에서 에이즈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에이즈의 날 우리 모두가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다. 에이즈 환자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 사람일 수 있지만, 그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다른 병에 걸릴 수 있듯이 똑같은 환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혹시 ‘죽어도 싸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당신의 직장 동료, 이웃, 친구, 가족이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물론 감염이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을 아픔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환자가 아닌, 마치 ‘죄인’이나 ‘죽어도 싼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지는 않는지.
우리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실제 에이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난잡한 행위를 해서 걸리는 것도 아니며, 꼭 무슨 죄를 지을 행동을 해서 걸리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억울하게 감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며, 이들은 사실 죽음보다 더 커다란 정신적 고통과 소외로 오늘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는 약 1500명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실제 보고되지 않은 수까지 합치면 이의 3∼5배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아직 그리 많지 않은 수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주의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양지로 나와 사람들의 보호 속에 치료받고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통 에이즈를 불치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미 에이즈에 대한 다양한 치료법과 약들이 나와 있어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에이즈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우리도 언제나 병에 걸리듯이 그들도 우리와 같은 환자로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따뜻한 마음과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이 승 우(한국 MSD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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