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어떤 환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사소한 질환인데도 국내 의술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의 의술이 낫다고 생각해 해외로 가서 치료받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미국의 시립병원 같은 곳에서 경험 없는 레지던트나 펠로에게 수술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몇십 배 치료비를 지불하고서도 “미국의 병원에서 치료받았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는 환자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 시민권을 아이에게 얻어 주려고 미국에 원정 출산하는 산모도 있다고 한다. 자식의 교육비나 병역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고 하니 가히 눈물겨운(?) 모성애임에 틀림없다. 이래저래 의료비의 해외 유출은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의학의 국수주의나 쇄국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나의 건강을 위해 내 돈 내가 쓰겠다는 데 무슨 시비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은 돈대로 쓰면서 언어소통 때문에 애를 먹어가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며 치료를 받았을 때, 과연 우리나라의 실력 있는 전문의나 교수에게 진료받은 것보다 나은 진료를 받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떠한 대책이 의료비의 해외유출을 막을 수 있을까. 첫째, 우리나라 의료 발전에 근본적으로 걸림돌이 되고 있는 획일화된 건강보험제도를 고쳐야 할 것이다. 공공보험은 자동차보험에서의 책임보험처럼 기능하고 사보험이 고부가의 진단이나 치료법을 담당하는 기능을 갖도록 유도해야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병원이나 의료재단에 외국처럼 세금 혜택을 많이 주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는 독지가들이 병원에 기부금을 내는 일이 잦고 그 기부금에 면세 혜택을 주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세금이 부과되므로 병원에 기부금을 내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부금들이 불치병 연구와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셋째, 외국의 의사들에게 능동적으로 의료시장을 개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우리나라 의사면허를 받아야 진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대학병원 급에서 추천하는 외국의사에게 한시적으로 의사면허를 허용하는 정책을 검토해 볼 일이다. 이렇게 하면 해외 의료에 대한 우리나라 환자들의 욕구를 해소시켜 줄 수 있고 동시에 지적 교류를 촉진시켜 우리나라 의학의 세계화를 앞당겨줄 수 있을 것이다.
양정현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진료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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