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예외 없이 붉은 상의로 한마음임을 표시하는 5만여 관중의 환호와 응원 속에서 이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든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목표와 바로 전날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낮은 투표율에 대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며 마음 한편 허전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하나될 수 있는 우리 국민이 왜 선거 때마다 출신지역 경계선을 따라 이쪽 저쪽으로 편이 나누어지며 인맥을 따라 내편 네편으로 나누어지는 것일까. 축구에는 열광하는 우리 국민이 왜 정치에는 고개를 돌리는가.
한국-포르투갈전을 관람하는 내내 마음속에 맴돌던 질문의 답은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한국과 포르투갈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을 푸는 움직임을 할 때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히딩크 감독은 운동장의 한국팀 벤치 앞쪽에 선 채의 자세였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히딩크 감독의 시선은 포르투갈 선수들의 동작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포르투갈 선수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는 듯하였다. 아마 경기 시작 직전까지도 상대팀의 전력과 전술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경기가 시작되고 선수들이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는 전후반 내내 히딩크 감독은 계속 한국팀 벤치 앞에 선 채로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작전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경기 내내 선 채로 선수들을 독려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히딩크 감독의 모습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히딩크 감독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한국 선수들과 한마음이라는 것이었다. 분명 히딩크 감독의 그 모습은 단순히 경기에서의 승패를 떠나 1년6개월간 자신이 훈련시키고 다듬은 그라운드의 선수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자신이 맡은 책임에 있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하루에 1%씩 한국팀의 전력을 증강시켜 월드컵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100%로 만들겠다는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많은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잃지 않고 결국은 약속을 지켜내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5만여 관중이 경기가 종료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히딩크, 히딩크”를 연호하게 한 이유일 것이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지금, 한국정치에도 히딩크 감독과 같은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과 한 팀을 이루는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지도자,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지도자,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지도자, 그들이 진심으로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를 우리는 과연 언제 만나게 될까.
서경교(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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