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에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일본대중문화를 금지해 온 것도, 단계적으로 개방한다고 3년 이상 끌어온 것도, 그것을 위해 문화관광부가 ‘한일문화교류 정책자문위원회’라는 것을 만들고 20여명의 위원들이 회의를 거듭한 것도 모두 법과 규정에도 없는 것을 가지고 주먹을 뒤흔들고 소리만 지른 꼴이 되고 말았다. 정말 희극이다.
올 2월 처음으로 MBC가 ‘프렌즈’라는 한일합작 드라마를 방영했을 때도 필자는 일본어가 대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드라마를 정책자문위원회나 문화관광부가 허용은커녕 논의한 적도 없는데 방송국이 어떻게 그것을 방영하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이번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 문화관광부가 항의하고 협조를 요청했는데도 방송위는 방영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판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MBC는 이번에 일본주도의 합작 드라마라는 것을 방영할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규정에 일본어 대사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으니 앞으로는 일본어 영화도 일본어 가요도 얼마든지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때도 정책자문위에서 필자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항의하고 문화관광부가 자숙하라고 공문을 보내면 방송위는 ‘부질없는 얘기 그만 하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그것은 희극을 넘어 소극(笑劇)이 되고 만다.
왜 이런 우스운 꼴이 벌어지는가. 이 나라 정부라는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너무나 몰랐던 필자는 이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웃어야할 차례다. 이런 소극이 전개되는 과정은 지극히 간단한 것 같다. 문화관광부는 대통령의 명령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위해 자문위를 둔다. 방송에 관계되는 사항은 필요에 따라 방송위에 협조를 요청한다. 문화관광부와 자문위는 국익과 외교관계, 또는 국민의 정서와 국내 대중문화산업을 고려하면서,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결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방송위는 그런 복잡한 것은 모른다며 오직 규정만을 따진다. 문화관광부의 규제가 방송위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얼굴을 붉힌다.
어쨌든 이 틈새로 MBC와 후지TV는 끼어들었다. 그리고 어떠한 항의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협조와 합의를 존중하는 일본인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이것이 부처이기주의가 낳은 결과라는 것일까. 우리 정부 도처에서 이런 마찰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이에 끼여 민간 전문인으로 구성된 자문위는 공중에 뜬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자기 비하의 웃음을 거두고 정말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감사해야 할는지 모른다.
지명관 '한일문화교류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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