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기간 중 행정수도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워싱턴과 뉴욕이 이른바 정치수도와 경제수도로 각각 나뉜 미국의 경우를 참작했다면 공약에서 말하는 행정수도는 입법부 등도 포함한 정치수도가 된다.
이 공약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 했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낙후라는 두 문제의 동시해결에 ‘중앙정부산업’의 이전만큼 매력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수도 이전은 경제적 이유만으로 추진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제상황 못지않게, 아니 보다 중요하게 국내외 정치상황과 직결된 것이 그 입지요 이전이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안은 당시 가열되기만 하던 남북 대결상황에 대한 안보적 고려가 절대 이유였다.
당시 김대중 야당 지도자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보가 이유라면 이전을 반대한다’고 했다. 휴전선에서 먼 곳으로 이전하는 것은 군사전략적 조치일 뿐, 백성들의 호국의지에 무게를 둔다면 대치 현장에 바싹 붙여 수도를 유지해야 배수진이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독립 파키스탄은 수도를 카라치에서 인도와 영토분쟁 중인 카슈미르 인근의 이슬라마바드로 옮겼다.
광복했을 때가 수도를 새로 정할 호기였지만 분단상황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다급한 정국에서 수백년 묵은 수도라는 역사성을 승계함으로써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상징이 되었다. 그 뒤 서울의 현재 위상은 남북한간 평화체제마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를 지키자는 결연한 의지의 상징장소가 되고도 남는다.
통일 실현의 방법은 서로 다를지언정 한 민족이 두 국가로 나뉜 것이 ‘정상’이 아님은 남북한이 함께 인정한다. 조만간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말이다. 통일이 예기치 않게 빠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무튼 통일의 그날이 수도이전을 도모할 적기가 아니겠는가. 도시를 제대로 만들자면 최소한 20년은 소요되는데 졸속으로 수도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차 통일한국은 수도 이전 적지(適地)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의 접근성 중심인가, 수도를 낙후지 개발의 선봉으로 삼을 것인가 등을 따져야 한다.
당선자 주변에서 지적한 지방의 상대적 낙후 해소는 시급한 과제다. 김영삼 정부 때 식자들은 충청권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남쪽으로 내려가 전남과 경남을 잇는 남해안 벨트의 역점 개발을 강조했다. 지역감정의 골도 메우고 수도 파리에 억눌린 국토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지중해 연안을 집중 개발했던 프랑스의 성공사례에서 교훈을 얻자는 뜻이었다.
수도의 지방이전은 서울 비대증 해소도 주요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도시이론은 초대형도시가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고, 이게 나라발전의 견인차가 된다고 한다. 결국 대안은 지방분권이요 과감한 지방투자다. 따라서 당선자의 ‘신수도 건설추진위’는 ‘국토균형개발 대책위’로 바꾸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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