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임좌순/“바뀐 선거환경에 걸맞는 제도를”

  • 입력 2003년 1월 9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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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토크빌 등 많은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지난 대통령선거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겠지만 선거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동안 우리나라 50년 선거사에서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 오던 금권선거와 관권선거 시비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후보자연설회에 과거와 같이 대규모 청중이 동원되지도 않았으며 금품 및 음식물 제공, 선심관광 사례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비방 흑색선전 등 상대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일부 나타나기는 했지만 유권자들은 이에 현혹되지 않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유권자 의식은 정당이나 후보가 비방 흑색선전, 그리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던 과거의 선거운동 행태를 탈피해 공약과 정책대결 구도로 나아가게 하는 견인차가 되었다.

많은 유권자들이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자리바꿈한 것도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였다. 그동안 선거는 정치인들만의 행사로 인식되어 왔고, 대다수 유권자들은 한낮 ‘구경꾼’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나 선거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토론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순수한 자원봉사활동은 참여민주주의의 발전은 물론 깨끗하고 돈 안 드는 선거문화를 여는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 자명하다.

미디어와 인터넷이 선거운동의 중심 매체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였다. 총 87차례에 걸쳐 실시된 후보 TV토론은 많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선거운동의 중심 무대를 길거리에서 안방으로 옮겨 놓았으며, 정책대결의 선거로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전자개표기 도입으로 예전에 비해 신속하고 정확한 개표가 이루어지면서 철야개표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 이러한 긍정적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환경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5년 전인 97년의 제15대 대통령선거에 적용됐던 법규가 거의 그대로 적용됨으로써 법과 현실의 괴리현상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예컨대 선거운동에 있어서 인터넷의 문제나 자발적 지지 모임의 규제 여부 등에 대해 현실적 측면과 법 규정 사이에 상당한 괴리감을 겪어야 했다. 또한 인터넷이 중요한 선거운동매체로 등장하면서 그 익명성으로 인해 비방 흑색선전이 적지 않게 나타나 앞으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했다.

대선이 끝난 오늘날의 정치적 화두는 정치개혁이다. 정치개혁은 정당과 정치자금, 그리고 선거제도가 그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긍정적 변화는 더욱 발전시키고 문제점은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합하면서도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 제16대 대통령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임좌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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