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재헌/이라크재건은 '플랜트부활' 기회다

  • 입력 2003년 4월 2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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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라크전쟁 파병으로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 이 사업의 핵심은 유전, 항만 등 기간산업과 도시 인프라의 재건이므로 국내 경기 때문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한국의 플랜트산업계도 호재를 만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건설교통부, 대형 건설업체와 중공업 업체들이 이라크 복구 시장 참여전략을 마련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 이 사업에 대한 위험 분석이나 투자경제성 예측 등을 총괄하는 곳은 없다. 중복되는 부분과 빠진 부분 등을 체크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양상이다.

플랜트산업이란 정유, 가스처리, 환경처리 등 자본과 기술을 한데 묶어 국가기반 설비를 공급해 주는 업종으로 한국은 지난해 약 10조원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이러한 사업은 20∼30년의 경험이 축적된 인력집단만이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발전공학, 공정설계 등 공학 분야뿐 아니라 파이낸싱 기법, 국제계약, 투자위험 분석 등 경제 금융 분야에 관한 경험도 아울러 요구되는 중대기업형 업종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연간 6000억달러 정도의 시장규모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시장 대부분을 장악한 선진국들의 플랜트 기업과 경쟁하거나 시공 하청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요즘 단기간에 개발 가능한 기술이나 상품으로는 중국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는 아무나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고부가가치 창출 업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플랜트산업은 국가차원에서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최근 부산 신항만에는 외국계인 C사가 대주주로 장비 도입권을 행사해 2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항만용 크레인을 구매할지 모른다고 한다. 분리발주 방식을 전제로 하는 현행 국가계약법 체계 하에서는 항만시설과 같은 대형 인프라 공사에 값싼 외국제품이 들어오는 것을 규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 내 어느 부처에서라도 이를 막았어야 했다.

정부 부처가 플랜트산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산업자원부는 플랜트를 하나의 패키지화된 생산설비 상품으로 보고 있으며 건설교통부는 엔지니어링이 접목된 건설업종으로 보고 있다. 이러다보니 최근 산자부의 플랜트산업협회 출범을 계기로 정부 부처 간 관할권 다툼이 본격화됐다. 이 속에서 힘없는 업체들은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지원체계도 분산돼 있다. 설계 기획 기술력을 키우는 플랜트 기술 분야에 교육인적자원부나 과학기술부의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자재 구매와 관련해서는 산자부의 몇 개 부서가 해외 수출과 국내 구매로, 시공에 관해서는 건교부의 몇 개 부서가 해외 건설과 국내 건설로 구분돼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국내와 해외 플랜트의 담당부서도 다른 마당에 인재 육성이나 기술연구 지원은 요원하다.

출범 초기인 현 정부는 임기 내에 플랜트산업을 재건시켜야 한다. 30년 이상 꾸준한 투자가 이뤄져 왔고 향후 30년간도 경제적 효과가 큰 산업이므로 긴 안목을 갖고 국익을 고려해 지원해줘야 할 것이다. 신기술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잘 발달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국익 증대에 우선 이용할 수 있길 바란다.

이재헌 한양대 교수·대한설비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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