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인재/"열린 자세로 사법개혁 추진할 것"

  • 입력 2003년 9월 18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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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대법원과 청와대가 ‘사법개혁추진기구 설치를 위한 실무협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사법개혁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사법개혁의 종착지까지는 이 실무협의회의 긴 이름만큼이나 먼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몇 차례 반복돼 온 사법개혁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1993년 대법원에 설치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 1995년 국무총리 소속의 세계화추진위원회에 이어 1999년 대통령 소속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됐다. 특허·행정법원과 같은 전문법원의 설치, 사법시험 정원의 확대, 영장실질심사제와 같은 사법제도의 변화들은 모두 그 과정에서 산출된 성과였다.

한편 사법개혁추진 과정에서 우리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검토 없이는 국민을 위한 사법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연 2만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원은 국민이 원하는 만큼 충실하게 법이 무엇인지를 선언하기에 벅차고, 소년등과(少年登科)한 판사는 서민들의 다툼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너도 나도 고시촌으로 몰리는 사회현상은 대학교육마저 붕괴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대법원의 기능이나 법조인 양성 및 선발 등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의가 결실 없이 공전하였던 까닭은 사회경제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법조계와 관련 행정부 및 일반시민이 함께 논의해 그 결과를 제도화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기구를 만들지 못한 탓도 있었다.

수십년간 지속돼 온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는 국가제도의 기본틀에 관한 것으로 어느 누구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이 중심이 된 사법개혁은 자칫 사법제도의 운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고, 대법원이 중심이 된 사법개혁은 자칫 국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제도화를 위한 뒷받침의 부족으로 허망한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대법원과 청와대는 어느 누구도 사법개혁을 주도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고,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을 결집하는 기구를 마련하고 그 기구에서 논의된 결과를 충실히 집행할 공동의 의무를 지고 있을 뿐이다.

최근 대법원과 청와대가 공동 구성한 ‘사법개혁추진기구 설치를 위한 실무협의회’는 글자 그대로 사법개혁추진기구 설립을 위한 터를 닦는 협의체에 불과하다. 사법개혁의 내용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임무는 장차 설립될 사법개혁추진기구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다만 새 기구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근거 규정 마련, 기본적인 조직 구성, 대강의 운영일정 수립 등이 앞서야 하고, 이러한 기초작업을 협의하기 위한 기구로 실무협의회가 구성된 것이다.

사법개혁추진기구의 설립까지는 다양한 의견수렴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 기구가 구성될 때에도 각계각층의 폭넓은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법원은 어느 때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사법개혁에 임하고 있고, 보다 개방적인 여론수렴과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법원이 국민을 위한 법원이 되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길 바란다.

이인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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