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는 이미 100개가 넘는 정당이 설립됐고 200개가 넘는 시민단체(NGO)가 만들어졌다. 컨벤션센터에서는 주 1회 ‘이라크 NGO포럼’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들 NGO는 사담 후세인 정권에 희생된 사형수나 행방불명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명예회복을 준비하는 단체에서부터 극심하게 낙후된 지역에 대한 보건교육과 의료서비스, 여성들의 기술교육을 준비하는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내가 만나 본 이라크 사람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환영하지만 점령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면서 ‘한국의 경험’을 궁금해 했다. 두 형이 후세인 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한 법학박사는 한국이 전쟁 이후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데에 몇 년이 걸렸느냐며, 이라크가 하루 속히 안정되기를 염원했다.
지금 이라크에는 치안, 국민 통합, 정부 수립, 전후 복구, 경제발전 등의 과제가 산재해 있다. 이라크는 자연자원과 인적자원이 풍부하지만 당장은 지렛대가 되어 줄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계 각국은 주로 자국의 이익과 대미관계라는 관점에서 이라크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예컨대 터키군이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더라도 쿠르드족을 견제하기 위해 들어간다면, 이는 다시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수니파와 터키족을 지원하는 시아파간의 사분오열을 초래할 수 있다. 파키스탄이나 몽골의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연계해 파병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 이라크 전후 복구를 유엔이 선도해야 한다는 명분 뒤에는 이렇듯 여러 국가의 이익이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역시 이라크 추가 파병 여부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어떤 이는 대미관계 및 한반도 안보와 연계해 파병에 찬성하고, 또 어떤 이는 이라크나 중동시장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해 반대한다. 이라크와 비슷한 길을 걸어 온 한국의 경우 더 적극적으로 이라크인의 입장에서 전후 복구를 지원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파병에 대한 찬반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이라크인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아쉽다. 한국의 정부와 NGO, 군대와 기업이 함께 이라크의 전후 복구를 돕는 방법을 모색해 이라크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존중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진정 이라크를 돕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도움이 되는 길일 것이다.
이란-이라크전쟁 때 장애인이 된 어느 노인은 한국도 전쟁을 겪어 우리의 고통을 잘 알지 않느냐면서 한국인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미국처럼 큰돈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 여러분의 사정을 알리고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하자 그런 마음만도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가 진심을 간곡히 설명한다면 이라크인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국을 친구로 받아들일 것이다.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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