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권영한/‘정전大亂’ 우리도 대비책 세우자

  • 입력 2003년 10월 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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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대규모 정전사고 소식이 많다. 8월 미국과 캐나다 북동부 ‘대정전’ 사태에 이어 9월에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그 결과 미국과 이탈리아의 경우 각각 5000만명 이상이 정전 피해를 봤다.

우리나라도 태풍 ‘매미’로 150만가구 이상이 촛불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경남 거제지역은 5일 동안이나 암흑천지가 됐다.

우리나라의 정전사태는 매우 ‘운이 좋은’ 경우였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는 하나의 송전선 사고가 수백km에 이르는 지역으로 파급되는 대정전을 일으켰는데 우리는 고리와 월성 원전의 대형발전기 4기가 정지되고서도 일부지역 정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이번에 추석 연휴로 공장들이 멈추지 않았다면 전국적인 대정전으로 확대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 이틀간의 정전사태로 최소 6조원의 피해를 본 미국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전력수급에 관한 중장기 대책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

첫째, 발전소 건설과 송전선 현대화의 문제다. 북미지역 대정전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설비투자와 현대화의 소홀이었다. 이는 우리도 우려되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발전회사를 분할하는 등 구조개편 중이며 이로 인해 발전소 건설 등의 책임 한계가 불분명하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으로 인해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설비건설이 적기에 시작되지 않거나 중단되는 사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켜지기 전에 정부는 조속히 장기수급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건설방안 등 세부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둘째, 정전 없는 전기문명을 향유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이나 산을 가로지르는 송전선과 철탑, 아파트 옆에 들어선 변전소에 대한 혐오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전기 중 원자력에서 나오는 양이 40%에 이르고 우리 땅의 70% 이상이 산인데 다른 특별한 대안이 있는가. 우리가 TV를 보고 전등을 켜려면 좋든 싫든 대가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셋째, 러시아나 북한과의 전력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수력과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며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송전선만 있으면 바로 수입할 수 있는 전력도 상당히 있다. 이는 향후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되고 폐기물이나 환경문제도 없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안이다. 한편 개성과 같은 휴전선 인접지역에 남북공동 전원단지를 건설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정치안보적 차원에서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민보상 등 작금의 사회적 비용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기술인력 양성과 신기술 개발을 활성화해야 한다. 태풍으로 정전됐던 가정에서는 인터넷이나 통신은 물론 TV까지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처럼 지식기반사회든 2만달러시대든 신뢰성 있는 전기에너지 공급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기분야의 기술개발이나 인재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권영한 한국전기연구원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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