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여야 정당은 전국구 의석의 50%를 무조건 여성에게 할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각 정당들은 요즘 ‘여성 인재’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고, 그 때문에 모처럼 확보된 여성 의석이 부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한다. 양성 평등을 모토로 삼고 캠페인에 열을 올리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최근 상승세에 있는 여학생의 학업 성취도도 3F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남녀공학 고교에서 상위권은 거의 여학생이 독점하기 때문에 아들을 가진 부모는 남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주소를 옮기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남녀 성취도 차이와 관련해 정설로 굳어졌던 것이 ‘중학교 역전설’이다. 여아는 남아에 비해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는 인지적 측면에서 남아를 압도하지만, 중학교에 이르면 반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전 시기가 점점 더 늦어지고 있다.
여학생의 성취도가 높아진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컴퓨터 게임과 음란사이트 등에 탐닉하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 인터넷과 오락실의 등장이 남학생들에게 치명적인 학업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둘째, 예전엔 딸이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차별받아 왔지만, 한두 명의 자녀만 두는 요즘 가정에서는 그런 차별이 거의 사라졌다. 또 젊은 부모들은 딸을 전문직 여성으로 키우려는 의식이 많아 딸의 학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셋째, 새로운 수업과 평가 방식이 여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요즘 학교에서 강조하는 소집단 협력학습,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수업, 수행평가, 시각화 자료의 도입 등은 여학생의 사고 양식에 더 잘 부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학생의 일취월장은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견해도 없지는 않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같이 학교 수업에서 취급한 친숙한 내용을 다루는 검사에서는 여학생의 성취도가 높지만, 모의고사나 대학수학능력시험같이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내용에 대한 검사에서는 남학생의 강세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인지 양식의 특성을 각각 ‘친숙함(familiarity)’과 ‘생소함(novelty)’으로 대비시킨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 여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성실하게 복습하기 때문에 수업 내용에 대한 평가에서 높은 성취 수준을 보이는 반면, 남학생은 진취적인 성향 때문에 생소한 문항에 도전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아무튼 한 국가의 인력 수준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의 조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의 약진은 반가운 일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사회에 나와서도 ‘절반의 몫’을 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도록 현재의 여학생들을 ‘준비된 여성’으로 키워야 한다. 각 정당들이 겪고 있는 여성인력 부족 현상을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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