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부안사태는 국무총리의 대화 제의로 정부와 주민간에 대화기구를 구성해 평화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시작한 대화였기에 결코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견을 좁혀 가는 성숙한 대화의 장이 열리기를 소망했다.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기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이번에 반드시 고쳐져야 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와의 대화 과정에서 부안대책위가 제시한 연내 주민투표 실시 방안은 그동안 무조건 백지화를 주장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진전된 내용임에 틀림없다. 정부도 주민투표 실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혀 문제 해결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단지 국책사업에 대한 주민투표 선례가 없는 만큼 시기나 방법은 앞으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며 주민투표의 연내 실시가 사실상 불가능함을 밝혔다.
그러자 부안대책위는 곧바로 대화 결렬을 선언했고, 부안에서는 또다시 과격 폭력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주민들의 반발은 도를 넘어선 것으로, 질서와 평온이 회복돼야 대화가 가능하며 폭력 시위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엄정 대응 의지를 밝혔다.
어떻게 보면 문제가 될 수 없는 사안을 놓고 문제를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주민투표 실시라는 커다란 합의점을 찾았으면 그 다음의 세부적인 내용은 또다시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면 될 것이다. 대화는 그렇게 시간을 두고 서로간의 접점을 찾아 가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까지 한 과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가는 것이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당장 가시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대화를 중단하면 합리적인 문제해결은 영영 불가능해진다. 더욱이 과격한 시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숙한 민주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
사실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은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한 반드시 필요한 국가시설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원자력발전이 우리나라 전기공급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이번 부안 문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정부가 부안 주민들에게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의 안전성 확보 방안과 함께 획기적인 지역발전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그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역개발을 위한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지금 부안 문제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신뢰와 대화’다. 국가정책과 관련해 신뢰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신뢰 형성은 결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양쪽 모두가 지역과 국가발전이라는 대국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문제의 해결은 현재 원자력의 혜택을 받고 있는 우리 세대가 해결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기본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 의무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설 필요가 있다.
최창섭 서강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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