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온다는 사람이 안 와 서둘러 찻값을 치르려던 계 선생의 목소리가 커졌다. “찻값이 왜 이리 비싸. 그까짓 볶은 콩 우려낸 물 값이 국수 네 그릇 값보다 많으니….” 찻집 사람이 “여기는 그런 데”라고 받아친다.
“뭐야, 여기는 돈을 물 타 먹는 도둑놈들만 사는 데란 말이야? 민주화란 딴 게 아니구먼. 군사독재와 함께 썩어문드러진 것들도 모두 청산하는 것이지.”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얼른 계 선생의 팔짱을 끼고 간 곳이 시장 뒷골목의 허름한 찜닭집.
거기서 닭 반 마리, 국수 한 그릇, 대포 한 잔을 시켰는데 계 선생이 워낙 찜닭을 좋아하는 터라 나는 손도 안 댔는데 어느새 뼈만 남았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닭대가리나 한 사발 달라고 했을 때다.
계 선생이 슬며시 일어나며 곧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먹은 값은 되겠는데 닭대가리를 또 시켰으니 돈을 구하러 가신 모양이었다. 닭대가리는 거저인 것을 모르고. 그 게딱지같은 집에 손님은 밀리고 밤은 깊어가고 일어나자니 돈은 없고 에라 모르겠다, 대포를 석 잔째 마실 적이다.
“백 선생이지요. 잠깐 가셔야겠는데요.” 철컥 고랑이 채워져 끌려나올 때 계 선생이 골목으로 접어들다 이를 보고 멈칫 몸을 사리신다. 그때 닭집 아주머니가 내 등에다 칼을 꽂는다. “닭대가리를 공으로 먹었으면 찜닭 값은 내야지. 그냥 가니까 밤낮 잡혀다니지. 염병할….”
그리고 세월은 흘러 20여년. 21년 일한 일터에서 한 달에 받는 돈이 세금, 손배 가압류, 집세 따위를 빼면 12만9000원. 그걸 갖고 어떻게 사느냐고 울부짖다 몸에 불을 지른 한진중공업 노동자를 기리는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문을 보니 바로 그 신라여관과 권노갑씨 이야기가 있었다. 북쪽과 거래 트는 데 도와주겠다며 현대재벌로부터 200억원 받고 이어 3000만달러를 받았는데 그 현장검증을 한다는 기사다.
또 한 귀퉁이 기사를 보고는 늙은 주먹일망정 내 손의 식은땀마저 으스러지는 걸 느꼈다. 권씨가 바로 그 비싼 집에서 상어지느러미를 곁들여 한 끼 밥값이 30만원 하는 것을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먹었다는 그 집 일꾼의 증언이었다. 점심 한 끼에 30만원? 찜닭 반 마리 값의 예순 배다. 그것에 네댓 사람이 술까지 곁들이면 140만원. 그걸 먹으며 뇌까린 민주화와 통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도저히 내 힘으로는 어림할 수가 없어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내가 잘못 살아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 내가 잘못 살아 왔다.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이제부터 나의 명제, 참 민주화다 통일이다 하는 것들은 첫판부터 다시 차름(시작)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남은 목숨 몽창 걸고.”
햄버거 간판을 흔드는 가을바람보다 더 세차게 늙은 주먹이 울었다.
※ 이 글은 백기완 소장이 여러 지인들에게 동시에 보낸 편지글로서 필자의 양해를 구해 게재합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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