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서울 강남에 국기원이 완공된 것과 함께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 모인 세계 태권도 지도자들에 의해 세계 태권도의 경영기관인 세계태권도연맹이 설립됐다. 이것이 태권도 세계화의 본격적인 출발이었다.
그 후에 태권도는 아시아 미주 유럽 아프리카의 각종 대회로 뻗어나갔고,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시범종목으로,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명실상부한 세계적 스포츠로 떠올랐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발전에 반해 한국 태권도계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태권도계 내부에 파벌 싸움, 부정부패, 정치적인 후진성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태권도를 이용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태권도 관련기관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어 출세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태권도의 건전한 발전에 신경 쓸 틈이 어디 있겠는가. 한마디로 한국은 이미 민주화를 성취했지만 한국 태권도계는 20년 전 독재시절의 정치문화 유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태권도가 더 이상 한국인의 것만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가맹단체다. 한국인들만의 조직이 아니다. 물론 세계 태권도 가족들은 한국의 태권도협회와 지도자들이 그 주도적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의 많은 외국인 태권도 지도자들을 만나 보면 그러한 기대가 없어진 지 오래라는 이야기를 점점 더 많이, 더 자주 듣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태권도를 특정인, 특정 단체와 특정 국가의 사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한때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 제고에 한몫을 해 온 태권도가 이제 오히려 그 이미지를 먹칠하는 사태를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한국 태권도도 이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 대한태권도협회를 비롯한 한국의 태권도 단체들은 과거의 폐쇄적인 구조와 특정 지도자 중심의 운영방식 및 사유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지도자의 선정뿐 아니라 조직 운영에서도 공정성과 투명성을 철저히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한국 태권도인의 미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로서의 태권도의 질적인 발전을 고려해서도 그렇다.
누구보다 태권도를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호소한다.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한국의 자랑이자 세계의 사랑인 태권도의 위상을 흔드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춰 달라고.
스티븐 캐프너 체육학 박사·태권도 공인 6단·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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