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명윤리법안 마련을 위해 지난 3년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오랜 산고 끝에 정부는 10월 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로 보냈다. 인간복제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 다른 네 개의 생명윤리 관련 법안들과 같은 하나의 법률안이긴 하지만,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생명윤리 논쟁에서 정부의 기본방침을 마침내 정리해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정부뿐 아니라 과학기술산업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모두가 생명윤리법이 신속히 제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법이 제정되면 생명과학 기술자들은 생명윤리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 생명과학기술의 범위가 법에 의해 설정되면 연구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연구자는 안정적인 연구활동을 보장받게 된다. 생명윤리법의 제정이 늦어질수록 국내의 연구자들은 연구활동의 불확실성을 짐으로 떠안게 된다. 혹시 내가 하는 연구가 윤리적으로 지탄받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부담감이다.
종교계 시민단체 여성계 등 69개 단체는 이미 2001년부터 ‘조속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을 구성해 관련 법 제정을 촉구해 왔다.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종교계 시민단체 여성계가 통일된 의견을 모으는 건 드문 일이다. 이렇듯 공익이 요구하는 법 제정을 국회는 왜 외면하는가. 생명과학기술 선진국치고 우리나라처럼 법령이 허술한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법 제정 지연으로 인한 국가경쟁력 손실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법 제정이 미뤄지면 누가 이득을 보게 될까. 인간복제를 주장해 오던 유사종교 단체가 반길 것이 분명하다. 올여름 한 유사종교 단체의 지도자가 방한하려 했을 때 한국 정부는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그 단체는 그 뒤 현재까지 이에 대한 항의편지 70여통을 해당 부처에 보내고 있고,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우리 정부에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생명윤리법 통과가 미뤄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만약 생명윤리법이 16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또한 중동 아시아 국가에서 인간복제를 실행하겠노라고 공언하는 구미의 인간복제 찬동자들이 한국의 생명윤리를 오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 336명을 대상으로 11월 실시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6%가 인간복제에 찬성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생명윤리법의 제정이 하루속히 필요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국회 상임위는 생명윤리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구영모 울산대 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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