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편 가르기’가 시작됐다. 그것도 고질적인 지역갈등의 응어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채로 말이다. 정치인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당이나 이념을 떠나 지역 연고와 표를 좇기에 급급하다. 국가통합과 국민화합의 상징이 돼야 할 수도 입지가 낡은 지역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지역간 힘겨루기의 문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부를 위시한 수도 이전 찬성론자나 반대론자(신중론자 유보론자 회의론자를 모두 포함한다) 모두 비수도권을 살리자는 데에는 적극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가운데 유독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논란이 되는 이유를 추려보면 감성적 지역이기주의에 얽혀 있는 수도 이전 문제를 이성적으로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원초적 불신의 문제다. 수도 이전이 다분히 특정지역의 표를 겨냥한 정치행위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내년 총선까지는 수도 이전 추진을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미 나와 있다.
둘째, 수도 이전에 대한 사회적 가치판단의 문제다. 찬성론자들은 수도 이전이 대선공약으로서 충분히 추진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거시적 역사적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찬성론자들은 수도 이전이 통일과 무관한, 시급한 일이라고 보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통일문제와 결부된, 민족적 상징성이 큰 사안이라고 본다. 가치판단이란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는 결국 국민의 판단과 선택의 몫으로 돌려야 할 문제다.
셋째, 비수도권을 살리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다. 찬성론자들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처방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비수도권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수도 이전 수술이 불필요하고 만일 강행하면 오히려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런 방법론의 차이는 비교적 합리적 논의가 가능한 부분이어서 전문가들의 식견을 빌려 국민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면 될 문제다.
수도 이전 문제는 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감정과 이를 이용한 지역정치의 굳은 껍데기를 벗겨내고 이성적으로 문제의 구조를 하나하나 해부해야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충분히 논의하도록 하고 마지막에 사회적 가치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국민의 선택에 맡기면 될 일이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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