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기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의 원장으로서, 또 과학기술인의 한사람으로 이런 훌륭한 인재를 잃게 된 데 대해 안타깝고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 젊은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하고 있는 해양연구를 한 차원 높게 승화시켜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극지연구를 포함한 해양연구 현장은 항상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연구원들은 연간 평균 150여일을 가족과 떨어져 거친 파도와 풍랑에 맞서 일하고 있다. 해양과학기술은 고압, 저온, 암흑이라는 특수하고 가혹한 해양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특수·극한 기술이자 원자력, 항공우주과학 등과 함께 막대한 시설과 장비, 연구비 투자가 요구되는 거대과학이다.
우리나라 해양산업은 가까운 장래에 국내총생산(GDP)의 11%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해양과학기술 육성방안 및 지원기반은 아직 미약하다.
그러면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젊은 과학자들이 거친 바다와 싸우며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협소한 국토와 한정된 자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해양진출을 적극 추진했다. 남극과 북극에 진출해 미래 자원개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하와이 동남쪽 태평양 공해상에 남한 면적 4분의 3 크기의 심해저 광구를 확보해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전략광물의 개발을 위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또 제주도 서남쪽 149km의 수중암초인 이어도에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건설, 해황(海況)과 기상예보에 활용토록 해 태풍 및 자연재해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육지를 중심으로 한 그동안의 소극적 사고에서 벗어나 해양 중심의 진취적 사고를 갖기 위해선 당장 활용이 가능하며 미래 잠재력이 큰 해양과학기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선 충분한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재규 연구원을 잃은 슬픔에 온 국민이 상심과 통분의 시간을 보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던 젊은이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희생은 우리 마음에 남아 우리를 채찍질하고, 대한민국 남극연구의 영원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남극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정과 동료애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남극연구를 포함한 해양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고 전재규 연구원의 아름다운 희생이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들에게 개척자 정신을 고취하고 해양개발을 통해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변상경 한국해양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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