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종화/'여성 비례대표 할당'의 허와 실

  • 입력 2004년 1월 26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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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도 좋은 인재의 확보에 힘쓴다.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은 기업의 가치가 경쟁력 있는 고급 인력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평가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이 좋은 인재를 골라서 채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근로자의 자질을 사전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노동시장에 ‘정보의 불완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정보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이용한다. 고학력자를 우선적으로 뽑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미 검증된 경력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 결과 학벌사회의 폐단이 지적되기도 하고,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층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결과를 두고 무조건 학력제한을 철폐하라든가, 얼마 이상의 신규 노동자를 채용하라는 식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청년 실업 문제는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교육문제는 교육 대책을 우선해 풀어야 할 일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혁명’이 정치권의 화두다. 어느 때보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많기 때문에 ‘물갈이’에 대한 요구가 높다. 지역구도가 완화되고 선거가 인물 위주가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인지 정당마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정치에서도 역량 있는 ‘새 사람’을 고르기가 기업의 인재 확보와 마찬가지로 어렵다. 각 정당도 마치 기업이 경력사원을 스카우트해 오듯이 이미 검증받은 공직자 출신이나 사회 각 단체의 명망가들을 영입해 공천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겠다. 위험을 줄일 수도 있고 이미 확보된 지명도가 선거에도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1월 초 ‘맑은 정치 여성네트워크’가 100여명의 다양한 여성 후보를 내세운 것은 여성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알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한국은 소득과 교육수준에 비해 여성의 정치참여가 매우 낮은 나라다. 고위 공직과 의회에서 여성 비율을 높여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추천된 ‘여성 후보’ 대부분은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로 공천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주요 정당은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하겠다고 공약했다. 여성이 지역구에서 당선되기가 쉽지 않은 현실 정치의 벽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비례대표제가 여성 대표가 아닌, 다양한 직능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일진대, 공천에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도 있다. 여성 후보 공천은 선거전에서의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각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에 맞는 정책 개발과 깨끗한 정치 실현에 기여할 역량 있는 여성 정치인을 키워 나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여성의 정치참여 바람이 각 분야에서 역할 모델을 해야 할 여성 전문가들을 모두 정치판으로 끌어들여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끝난다면 여성계나 국가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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