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물 집단으로 소수자 집단이나 전문가 집단 외에도 세대 집단이 중시되면서 한때 386세대가 그 희망으로 제기됐다. 그들은 80년대 이래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 특히 권력 주변 386세대의 인물들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는 부패와 권위주의, 그리고 권력 욕구에 있어서 그들이 구정치인들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던져 준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안희정씨는 장수천 관련 논란이 일던 작년 3월에 부산의 모기업체로부터 2억원을 받았고, 나라종금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던 8월에도 또 다른 2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그는 2002년 민주당의 후보경선과 대선과정에서도 기업들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 386세대 정치인은 대통령에게 큰절을 해 권위주의에 젖은 모습을 보여줬다. 공천과 당직을 둘러싸고 386세대 정치인들 사이에 견제가 극심하다는 사실도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이들이 갖고 있는 도덕불감증과 왜곡된 자부심이다. 부패에 연루된 기성 정치인들이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하는데도 이들은 옥중 출마를 해서라도 대중의 직접 심판을 받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선기간 중의 정치자금 수수는 개인비리나 권력형 비리와 무관하고 불완전한 정치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니 개인의 책임은 없다는 논리다. 안씨는 작년 3월에 승용차를 바꾼 사실이 논란거리로 등장하자 “친구들이 도와줘 차를 바꾼 것이 무슨 문제냐. 기득권 세력들이 음해하고 있다”며 당당하게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388세대라고 자칭하려면, 특히 도덕성을 최대의 무기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에 몸담은 386이라면 그 상징에 걸맞은 정체성을 보여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가 민주당에 잔류한 한 정치인은 권력 주변의 386들이 세 번에 걸친 돈벼락에 무너져 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한 바 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절제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어떠한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정치의 앞날은 절망스럽다. 설사 이 모든 것이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386세대가 그 스스로 ‘386’이라는 이름에 부여하고 있는 도덕성과 개혁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우선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새 정치인의 모델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번 총선을 통해 더 많은 386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것이다. 이 ‘정치권 386’은 민주화과정에서 보여준 386세대 모두의 역사적 역할과 그 희생에서 정치적 양분을 공급받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 모집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더 젊은 세대에게도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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