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혼율 급증을 우려하는 것은 그 후유증 때문이다. 이혼은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여러 스트레스 가운데 ‘배우자 사별’ 다음으로 큰 충격을 준다고 한다. 나아가 이혼은 자녀와 주변 사람들에게도 직간접의 스트레스를 줘 결국 사회 전반의 행복지수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필자도 의료 현장에서 이같이 변화된 현실을 체감하는데 정관복원술이 그 상징적인 경우다. 정관복원술은 피임을 위해 정관절제술을 받은 사람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관을 다시 잇고자 할 때 실시하는 수술이다. 필자는 보험 적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관복원술을 원하는 환자에게 항상 동기를 묻는데 그 변화가 대단히 흥미로웠다(현재 건강보험은 자녀 사망 또는 기존 자녀가 심신장애일 경우의 정관복원술에 한해 적용된다).
서울대병원에서 이 시술을 받은 남성들의 동기로는 1960∼90년엔 ‘자녀(대부분 아들) 더 원함’(68%)이 가장 많았고 그 밖에 ‘자녀 사망’(16%), ‘재혼’(11%)의 순서였다. 그런데 1991∼95년에는 ‘자녀 더 원함’(60%), ‘재혼’(24%), ‘자녀 사망’(12%)으로 일부 순위가 바뀌더니 1996년 이후엔 아예 ‘재혼’(55%), ‘자녀 더 원함’(29%), ‘자녀 사망’(7%)의 순서였다. 재혼이 정관복원술의 가장 큰 동기가 된 것이다. 이는 이혼율 증가를 실증하는 또 하나의 지표다.
최근 정부 일각에서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성장잠재력 감소를 우려해 정관복원술에 대한 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자녀 사망 또는 심신장애의 이유 없이 자녀를 더 원하는 경우(예컨대 ‘늦둥이 출산’)나 재혼의 경우에도 보험 적용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마당에 그 정책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질병 발생 시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회보장제도다. 따라서 보험급여의 범위 확대는 사회구성원들의 추가 부담을 전제하므로 그 타당성이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는 근본적으로는 만혼 풍조와 육아 교육의 부담을 우려한 출산 기피 등에 따른 것이다. 보조금, 세제 보험 혜택 등 단기적 출산장려책으로 실패를 맛본 독일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깊은 고려 없이 대증요법 차원에서 재혼을 위한 정관복원술에까지 보험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재고돼야 한다. 더구나 그것은 당사자가 귀책사유를 가지면서도 그 여파에서는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를 낮춘 구성원을 위해 사회가 공동책임을 지는 모순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현장 의료인의 판단이다.
백재승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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