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집권 1년을 평가해 앞으로도 계속 나라가 이 상태로 가면 ‘도저히 대한민국이 유지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카드인 탄핵을 꺼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상적인 국민이면 그렇기 때문에 두 야당이 힘을 합쳐 탄핵을 발의했고 또 통과시켰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민의 지배적 여론이 ‘탄핵은 너무했다’인 것으로 밝혀지자 이를 추진하는 데 참여했던 일부 의원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탄핵을 철회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새 대표가 선출되면 청와대와 협상해 탄핵안을 철회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라.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긴가. 탄핵을 추진하면 모든 국민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또한 탄핵의 대상이 된 권력이 가만히 앉아 “네, 알았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던가. 탄핵은 법 절차를 따르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전쟁을 하는 일이다. 이를 논두렁의 지렁이 밟듯 아무런 뒷감당 없이 치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야당은 뇌가 없는 아메바와 같은 집단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1년 전 대선에서 나타났던 갈등구도가 지금 조금이라도 완화됐다고 판단할 근거가 있는가. ‘시민혁명’을 주문하고 ‘지배세력의 교체’를 구상하던 정권 아니었나. 특정 신문, 특정 집단을 끝까지 포위해 박멸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 정권이 아니던가. 털끝만큼도 사회통합을 고려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정권이었다.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결국 탄핵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한 것 아닌가. 홍위병 논란을 거듭해 온 시민단체와 이를 부추긴 방송, 그리고 일부 신문이 이를 보고 “잘했습니다”라고 환영하며 촛불 들고 거리로 나올 줄 믿었던가. 정당한 법 절차에 대한 권력의 물밑 저항은 물론 홍위병의 참전, 나아가 친여 매체의 여론몰이 등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를 상대로 피투성이가 될 각오로 국민을 직접 설득할 요량이 없었다면 탄핵은 절대 추진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론이 불리하자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별 볼일 없는’ 방송을 찾아가 ‘머리 조아리며’ 새 대표 뽑는 과정을 비춰달라고 통사정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탄핵이라는 ‘장난’을 저지른 의원들에게는 인격살인을 당해 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한 기업인의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찾아 볼 수 없는가.
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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