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지에서 ‘한국 주빈국’ 조인식을 치른 뒤 행사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조직위 구성을 거쳐 ‘한국의 책 100권’ 번역사업이 우선 착수됐고, 도서전시회나 문화·학술행사 등도 순차적으로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준비 상황은 그다지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 행사장이 도서전시장인 만큼 어느 나라에서나 출판계가 중심 역할을 하고 정부와 문화예술계, 재계가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조직위 구성부터 행사 준비과정 전반에 걸쳐 정부가 ‘과잉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예산 확보를 포함한 이렇다할 마스터플랜조차 수립돼 있지 않다. ‘한국의 책 100권’ 번역사업에 대해서는 ‘전략 없는 번역서 선정’, ‘졸속 번역 우려’ 등의 비판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고 출판비용 지원은 백지 상태다. 번역출판은 현지 출판을 추진해야 제격이다.
이제 비판은 접자. 문제는 앞으로 남은 1년 반이다. 무엇보다도 많게는 200억원까지 소요될 행사 비용이 일회용 이벤트에 소진되지 않도록 ‘행사 이후’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기획력이 필요할 것이며, 행사의 내용도 ‘밖에서 하는 집안잔치’가 되지 않고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일관된 콘셉트를 유지하되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적용한 예산과 공간 활용도 중요하다. 모두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여기서 두 가지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행사 전체의 콘셉트이다. 필자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우리는 휴전 상태에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유럽인들에게 지명도가 높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한다든가, 평화를 낳는 책과 문화의 한마당을 만듦으로써 지금도 진행 중인 세계 각지의 전쟁에 평화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총체적 홍보전략 수립과 함께 한국의 출판과 문화정보를 세세히 정리한 외국어판(최소한 영어와 독일어)의 온·오프라인 매체를 다양하게 준비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개별적인 번역도서 발간보다 훨씬 효용성이 큰 사업이고, 우리와 외국인들을 잇는 문화 파이프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만이라도 이뤄지면 주빈국 행사는 한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면서 세계인과 소통하는 문화제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문화는 물과 같다. 한국문화의 약수를 평화가 깃든 청자와 백자 그릇에 담아 세계인과 나눠 마시는 자리, 외국의 지성인들이 다시 마시고 싶은 정취 있는 우물을 만들자.
윤청광 한국출판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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