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인 미국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데, 취직해 월급 타 봤자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런 서민을 위해 미국은 일찍부터 모기지론이라는 장기주택저당대출을 도입해 집값의 10∼20% 종자돈(down payment)만 있으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것도 형태만 다를 뿐 부채이므로 길게는 30년 동안 매월 일정 금액씩 갚아야 한다. 보통 샐러리맨들은 은퇴 전후 60줄이나 돼야 빚을 다 갚고 진정한 내 집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도 올 3월부터 모기지론이 도입됐으니 내 집 마련을 위한 제도 면에서는 미국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미국과 우리가 다른 것은 집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집을 노후생활의 불안감 때문에, 또는 자식에게 물려줄 상속분으로 생각해 무덤에 가는 날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필수 재산으로 보지만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상당수 미국인들은 모기지론을 다 갚고 나면 그 집을 ‘역(逆)모기지(reverse annuity mortgage, RAM)’하고 금융기관에서 매달 융자금을 받아 비교적 여유 있는 노후생활을 즐긴다.
역모기지는 집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잡히고 매달 연금식으로 생활비를 받으며 일정기간 이후 또는 사후에 집 소유권을 금융기관에 넘기는 금융상품이다.
원칙적으로 은퇴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며,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은 이미 15년 전에 정부 차원에서 이를 사회보장시스템의 하나로 도입했다. 전형적인 예를 들면, 5억원 담보 가치의 집을 가진 62세 노인이 10년간 집값의 50%를 받기로 역모기지론 계약을 하면 매달 200만원, 20년간 받기로 하면 매달 1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계약기간이 지나면 지정금융기관은 집을 처분하고 남은 돈을 계약자에게 돌려주며, 계약자는 언제든지 재계약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은행이 일종의 역모기지 상품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제도 시행과 관련 상품 판매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 집에 대한 집착이 특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모기지제도의 사회보장적 기능에 대한 정부의 인식부족이 큰 이유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8%가 넘는 선진국형 고령화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인들이 자녀에게 생계를 의존하지 않고 떳떳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역모기지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역모기지 주택에 대한 세금(재산세, 거래세 등) 감면 등의 제도적 지원책도 강구돼야 한다.
이종인 한국소비자보호원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