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를 보는 국민의 시각은 사분오열돼 있다. 전투병 파병을 통해 테러집단을 완전히 분쇄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한미동맹을 끊고 이미 파견돼 있는 서희·제마부대마저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이라크 파병 반대론자들은 이번 사태를 또다시 파병 결정 철회 내지 전면 재검토 주장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사상의 다양성 및 정치 정향의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합법정부가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 결정한 외교안보정책을 존중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테러는 문명사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반사회적 야만적 행위다. 그 때문에 테러는 ‘징벌’의 대상이지 결코 무원칙하게 ‘타협’할 대상이 아니다. 만일 인류가 테러(불의)세력에 무원칙하게 양보하거나 굴복할 경우 그 테러(범죄)를 방조하는 것이 되며 이는 제2, 제3의 테러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테러의 목적 실현을 조장할 파병 철회가 아니라, 형사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반(反)테러 국제연대’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어야 한다. 테러 진압을 위한 국제협력은 문명사회의 당연한 요청으로,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이요 지켜야 할 가치다.
펜타곤 등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했던 9·11테러는 21세기의 세계질서를 구조적으로 바꿨다. 미국은 국제사회를 테러의 편과 반테러(문명)의 편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쟁 및 안보의 개념도 질적으로 변했다. 비(非)국가적 실체인 테러단체가 당사자로 등장하는 ‘새로운 전쟁’인 테러전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치고 빠지는 수법을 상용하는 테러전은 얼굴과 전선이 없는 전쟁이다. 테러전에 대한 만반의 대비가 없이는 국가안보, 국민안보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라크 파병도 파병이지만, 동북아의 관문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상 테러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라크 현지교민에 대한 철저한 신변보호, 주둔지 방호력 향상과 이라크 내 민사심리전, 신속한 영사보호 등의 대비책이 시급하다. 다만, 우리의 이라크 파병은 평화재건 지원을 위한 것이지 김선일씨 테러범 응징을 위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고방식은 자칫 우리 파병부대의 안전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비하기 짝이 없는 국가적 차원의 테러 대응태세를 대폭 보강해야 한다. 범정부적인 테러대책 수립과 시행평가를 위해 국가 테러대책회의를 신설하고 국가정보원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자는 테러방지법안이 제16대 국회의 폐회로 자동 폐기된 상황이다. 이 법의 제정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반테러의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대테러 실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테러 유형별로 국가 유사시 비상출동태세도 갖춰야 한다. 이렇게 국가 차원의 테러 대응체계를 총체적으로 개선 보완하는 것이 김선일씨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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