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의 숙소인 도쿄 아카사카의 뉴오타니 호텔은 일본 총리 전용 주차공간을 내주었고 전 직원을 동원해 환영 무드를 연출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 국토교통성 장관과 한국의 문화관광부 장관이 참가한 ‘2005 한일 공동방문의 해 선포식’ 때문이었지만, 관계자와 보도진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훨씬 큰 관심을 보였다. 다음날 최씨가 호텔을 나설 때에도 격식과 전통을 자랑한다는 뉴오타니측은 영국 여왕이 다녀갔을 때에나 있었음직한 ‘총지배인 직접 배웅’이라는 예우를 갖췄다.
일본에서 14년째 살고 있는 필자는 요즘처럼 즐거운 적이 없다. 어딜 가나 한국이 화제다. 여행사를 경영하다 보니 업무상 자주 만나는 호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국 드라마와 한국문화를 화제로 올린다. 예전에는 눈총을 피해,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고국의 문화와 전통을 말하곤 했는데….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유행이 된 지도 오래다.
이런 현상은 어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딸아이 손을 잡고 보육원에 갔더니 선생님들마다 첫인사가 “간코쿠 스고이데스네(한국 대단하군요). 부-무데스네(붐이죠)”라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일본 친구들이 자기더러 ‘용사마’(배용준) 닮았다고 한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떠들썩함을 마냥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곳의 한국 붐은 아직은 뿌리내린 문화는 아니다. 기우인지 몰라도 ‘한국’이라는 단편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서는 일본인들이 어떠한 이미지를 가질지 걱정된다.
많은 일본인들이 한류에 이끌려 한국을 찾고 있지만, 그들은 과연 ‘겨울연가’에서와 같은 아름다운 한국을 발견할 수 있을까. 도심과 관광지에서 마주칠 무질서와 혼잡,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조급증…. 이런 것들만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물론 ‘친한파’ 일본인 중에는 한국의 그런 무질서와 역동성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일본의 일류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한 일본인 친구는 “상식을 지키지 못해도 포용하는 한국이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질서와 조급증에 기인한 매력이 얼마나 지속될까. 한국 드라마 붐도 따지고 보면 일본의 80년대적 분위기에 대한 ‘향수’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이 과거회귀와 도피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한류가 가져온 기회를 우리가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행 관광업이 성황이지만, 과연 한류 관광상품이 제 몫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가? 국제무대의 저작권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기업들이 문화콘텐츠 수출에서 제값을 받고 있는가?
‘한류 이후’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상품을 진열할 수 있을 것인지, 수출된 우리의 문화를 국부로 환원할 방안은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한류를 창출할 수 있는지…. 겨울연가가 끝나고 봄이 오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미리미리 고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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