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순훈/‘불명예 퇴진’ PPA의 辯

  • 입력 2004년 8월 9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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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코감기 저격수라며 의사나 약사들에게 사랑받아 오던 우리 페닐프로판올아민(PPA) 성분 일족(一族)은 그 태생적 결함인 유해성(출혈성 뇌중풍)을 극복하지 못한 채 활동무대를 내려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사회적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79세 노인이 앓는 뇌중풍이 우리 PPA족을 복용한 때문인지, 고령에 의한 퇴행현상 때문인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50세로 사망한 남자의 사인이 우리 PPA족 복용이라며 치료 당시의 병원 처방기록(3일)을 근거로 소송하겠다는 주장이 불거져 나왔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태생적 결함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축소 왜곡 발표했다는 지적을 받던 관리 책임자가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허탈하다. 우리 PPA족은 교감신경계에 작용하는 획기적인 약물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태어나 오랫동안 묵묵히 세계 각국 환자들의 체중감량이나 비충혈(鼻充血) 제거작용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그 순기능조차 치명적인 오류로 여겨지게 된 이 비극적 종말….

누구보다 이 땅의 보건당국자들이 원망스럽다. 이미 2000년 말, 미국에서 퇴장명령을 받은 우리 일족이 있었고 체형적, 체질적으로 한국과 근접한 일본에서도 올 2월 말부터 우리 PPA족 대신 슈도에페드린이라는 친구를 대체 복무시키는 것을 듣지도 못했느냐고 따지고 싶다. 집이나 자동차는 이곳저곳 손보고 살아가면서, 우리의 결함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무심했는지…. 이 불명예 퇴장은 모두 다 저들의 무성의함 그리고 게으름 탓이라고 박아주고만 싶다. 우리 PPA족도 본태(本態)성 결함을 치료 받아 청정한 순기능만을 가진 몸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를 바랐었노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만 싶은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갖지 못한 우리가 어찌 이 뜻을 저들에게 전할 것이며, 이제 그만 물러가라는 저들의 명 또한 어찌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PPA족이 비록 치명적인 출혈성 뇌중풍 유발가능인자를 가지고 있다지만 그 역기능이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또 사람 몸에 축적되지 않고 곧바로 배설되고, 따라서 모르고 복용했다 할지라도 네댓새가 지나면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진실만은 보다 적극적으로 고지하는 것이 우리를 이 땅에 부른 저들의 책무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PPA족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암중 불안만큼은 털어내 주어야 마땅하거늘, 그저 손쉽게 우리를 수합 폐기시키는 쪽을 택한 비정한 저들을 어찌할 것인가.

우린 익물(益物)로 태어났으면서도 선천적 결함에 대한 그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논란만 부풀려 놓은 해물(害物)이 되어 이렇게 물러난다. 하지만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여전히 맡겨진 소명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 일족들만은 자상하게 치료해주며 보살펴주는 보건당국자를 계속 만나기를…. 이 땅의 후배 족에게는 보다 엄격하고 자애로운,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익물족으로 키워 가는 올곧은 어머니상을 보여주기를 저들 보건당국자에게 부탁하며 허여된 생을 마감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순훈 약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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