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아내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강제추행치상)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아내를 성추행하고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한 남편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 이 판결로 부부 사이에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인정된 것이다. 그렇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
부부간의 문제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이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여 ‘해결책’을 제시할 때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부가 상호간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돼야 한다.
이것이 혹시라도 ‘모든 것의 해결책은 법에서 찾는 게 좋다’는 것인 양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만이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는 그 판단 기준과 증거가 모호하다. 또 배우자간의 성생활 역시 존중받아야 하므로 이번 사건처럼 ‘특수한 갈등행위’로 불거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면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재판’이라는 국가 공권력의 개입을 가정해체의 도구로 이용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부부갈등의 문제는 가능하면 당사자가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는 교육과 상담을 통해 예방책과 조언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좋다. ‘법적인 해결책’보다는 ‘훈련과 치유’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와 사회는 문제가 심화되고 난 뒤에야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부간의 문제를 법원의 판결에 맡겨 버리는 사회는 분명 제대로 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일부 특수한 갈등구조를 제외하면 부부간의 문제는 따지고 보면 대동소이하다. 그런데도 문제가 있는 부부들이 모두 법원으로 달려간다고 하면 우리 사회의 가정해체는 더욱 앞당겨질 것이 뻔하다. 전문가의 손길로 아픔을 예방하고 갈등을 연착륙시키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국가와 사회는 이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 만사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가정 문제는 법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조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유엔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비해 부부 사이에서의 여권 신장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판결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별 국가의 문화와 상황에 맞지 않게 성급히 선진국을 쫓아가려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남편의 욕심이 부인의 불행으로 결론 나는 일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번 판결로 우리 사회에서 ‘법적 해결’과 이혼이 너무 쉽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이 땅의 모든 부부들도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가정의 행복과 조화에 대한 자기 책임 문제를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송길원 건강가정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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