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서정신/육아가 여성만의 몫이라고?

  • 입력 2004년 8월 23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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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대한민국의 30대 초반 여성이라면, 그리고 당신에게 서너살 정도의 어린 아이가 있다면 당신이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최근 한 여론조사의 응답 결과를 보면 30대 여성의 80% 정도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로 성차별보다 육아를 들었다고 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 혼자의 이기심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적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지우고 있는 것이 사회적 현실이다. 한국 여성이 예전처럼 씩씩하게 아이를 낳지 않고 아이 낳기를 늦추거나 포기하게 된 결과 빚어진 저출산율로 인해 나라에 큰일이라도 난 양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정부조차 도대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문화적으로 보아 대한민국처럼 모성 신화에 매달린 나라도 드물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 가족의 이상형을 규정하는 최고의 가치는 ‘훌륭한 어머니인 주부가 꾸려나가는 가정’이라는 듣기 좋은 슬로건이었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태어났기에 아이를 낳고 잘 키우는 것이 여성이 추구하는 최고의 덕이고 기쁨이며 이는 천지 만물 암컷과 인간 여성이 공유하는 존재 이유’라는 식의 모성 신화 이데올로기는 그 전근대성과 자연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대다수 남성들이 굳게 믿어 온 신념의 체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아내의 손에 맡긴 채 가족을 부양할 돈벌이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또렷이 구별되고 서로의 경계가 너무나 확실한 사회, 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모성 신화 이데올로기. 하지만 그 ‘아름다운 질서’는 그리 공고하지 못한 것으로 속속 드러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많은 아이들이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경제적 위기는 가정의 위기로 이어졌고 사라진 남편 대신 혼자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들에게도, 그리고 가출한 아내 대신 아이들을 맡게 된 아빠들에게도 모성 신화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육아를 전담하는 존재는 엄마 아니면 보육원이라는 현실이야말로 모성 신화의 숨겨진 추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높아만 가는 이혼율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각박한 취업 환경을 겪으면서 모성 신화를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하는 세대다. 결혼적령기에 목을 매지도 않고, 결혼 후 자녀출산 계획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자만큼 여자에게도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직장과 일에 매달리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한국 여성들에게 모성 신화는 이제 유효기간이 만료되고 만 것이다.

모성 신화의 대안은 무엇일까. 국공립 보육시설일까, 보육비 보조일까, 아니면 더 혁신적인 문화적 처방일까. 수천년을 지탱해 온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만료된 지금, 아이 기르기의 문화적 의미를 남녀 관계에 새롭게 적용시키는 새로운 가족 이데올로기를 모색하지 않고 보육시설 짓기 식의 해결책만 찾으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 추한 얼굴로 우리를 기다릴 수 있다.

서정신 ‘스프링 컨설팅’ 대표·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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