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선택/稅制명료해야 국민 승복한다

  • 입력 2004년 8월 30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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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심판원에 따르면 작년 국세심판청구 건수가 전년 대비 10.4% 증가한 5647건이며, 올해는 작년보다 20%나 더 늘었다. 이의신청을 수용한 비율인 심판청구 인용률도 40.2%로 크게 올랐다.

그만큼 억울한 세금 부과가 많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렇게 이의신청을 하게 될 때 납세자가 추가로 보는 피해는 세무대리인 비용뿐이 아니다. 지루한 불복 기간의 시간 투자와 정신적 피해, 그리고 재산권 및 개인자유권 침해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세심판청구가 증가하는 까닭은 우선 제도 때문이다. 복잡한 세법과 잦은 개정, 빠른 경제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본질적 한계 등에 기인한다. 또한 정부가 조세를 부동산 투기억제 등 재정 외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납세자와의 다툼이라는 매우 특수한 문제를 낳고 있다.

‘부당한(또는 정당한) 사유’ 등의 모호한 법 조항 역시 다툼을 예고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의 상속·증여세 과세 때 적용하는 시가평가 방법은 공준으로 확정하기 매우 어려워 임의기준이 불가피하다. 역시 다툼의 소지를 낳는다.

시대에 뒤떨어진 세무행정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목표나 인사고과 기준에는 아직도 ‘세금 징수’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세청의 우수 공무원은 으레 세금을 많이 거둔 직원이다. 게다가 감사원도 국세청 감사 때 세금을 덜 거둔 부분에 집중한다. 조세를 다루는 관료사회에 ‘법대로 세금 물릴 뿐 납세자 애로사항은 모르쇠’라는 사고가 만연돼 있는 셈이다. 이 밖에 부당한 세금에 대해 적극 이의를 제기하는 납세자 권리의식 향상도 국세심판청구 증가에 한몫했다.

그러면 이런 다툼을 최소화하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세제를 단순 명료화해야 한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제도는 반드시 다툼을 낳기 때문이다. 또 미국처럼 납세자가 세금 고지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원 판결 때까지 고지를 유예하고 납세자보호담당관 제도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등 ‘사전적 구제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감사원은 징세기관 감사 때 세금을 과다부과한 부분에도 똑같이 신경을 써야 한다.

잘못된 과세로 판명됐을 때는 추징가산세와 똑같은 환급을 보장해야 한다. 현행은 이의제기 후 세금 취소로 환급받을 땐 연리 4.38%만 얹어 돌려받는다. 이를 ‘추징시 추가불이익’(과소신고가산세 20%, 미납부가산세 연 10.95%) 수준으로 대폭 올리고, 적용요건이 극히 까다로운 국가배상법도 합리적으로 고쳐 선량한 납세자가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차제에 국세청 심사청구제도를 없애고 국세 지방세를 망라하는 ‘조세심판원’을 총리실 산하에, 사법부에는 조세법원을 각각 설립하는 방안도 본격 검토해야 한다.

최근 재정학계는 ‘조세’에 ‘납세자가 공동체 유지의 비용을 자발적으로 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납세자의 동의’를 중시하고 있다. ‘사전적 구제’는 ‘사후적 구제’보다 비용이 훨씬 적음은 물론이고 ‘제2의 세원(稅源)’인 ‘납세자의 동의’를 더욱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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