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도마에 올려졌고 그때마다 수십명의 외교관이 퇴직을 강요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 책임은 스스로 개혁을 게을리 한 외교부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부의 개혁안은 외교부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관장직의 30%를, 그것도 주요국 공관의 대사로 민간인을 임명하고 외교관 인사제도의 특성상 필수적인 대명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빼어남이 요구되는 외교관 주류를 비전문가로 충원하겠다는 것으로, 외교관의 사기 저하와 한국 외교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재고돼야 한다. 외교관은 대략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직업적 전문성을 기른 뒤 비로소 대사가 된다. 그런데 특정 분야에 다소의 전문지식을 가졌다고 하여 민간인을 40명이나, 그것도 주요 공관에 배치하겠다는 것은 한국 외교를 망치기로 작정한 것과 같은 불합리한 발상이다.
국제 환경 변화와 외교업무의 다양화에 따라 민간인이 담당할 수 있는 외교업무 분야가 확대됐고 많은 국가가 민간인을 대사직에 임명하는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 일본은 재외공관장의 약 20%를 외부 인사에서 발굴해 3년의 기간 내에 점진적으로 임명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이미 10여명을 임명했다. 미국도 오래전부터 다수의 대사직을 정치적 임명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정치적’ 대사는 전체의 30%에 훨씬 못 미치며 이스라엘은 1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에 비춰 볼 때 우리도 전체 공관장의 약 20%(25명 내외) 이내에서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민간인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며 공관을 미리 결정할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다.
한국 외교는 지금 국내외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한미동맹’이 ‘민족동맹’의 뒤로 밀려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중국의 경제대국화 및 패권주의 추구와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한가운데에 한국 외교가 있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국가 외교 체제의 중심에 있어야 할 외교부의 목소리를 들은 지 오래다.
국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외교의 질’이라는 말이 있다. 외교는 국력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외교의 질을 높이고 활성화하는 것은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안위, 국가생존, 국익의 문제인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교부의 조직 및 인사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은 학계, 경제계 인사 등으로 외교개혁위원회를 구성해 합리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박동순 전 주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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