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은 지난해 11월 정부가 ‘소득 2만달러 시대 도약을 위한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이미 예고됐다. 그 뒤 8월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 구조 개혁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중점 과제들을 보면 사립대의 처지에서는 ‘정원 감축을 하든지 교수를 더 뽑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대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학 구조조정이란 말의 핵심은 결국 입학 정원 감축이었던 것이다.
재정을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의 처지에서는 구조 개혁, 다시 말하면 입학 정원의 감축에 따른 재정 손실을 어떻게 보전하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문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학간 통합 촉진, 직장인 및 실직자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외국 유학생 유치 등 새로운 학습 수요 창출로 재정난 개선을 도모한다는 ‘대책’을 냈다. 그러나 전통적인 정규학생은 줄이고 직장인 등 비전통적 학생을 늘려 재정 손실을 보전한다는 그런 대책이 지금 상황에서 대학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결국 별도의 재정지원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원 감축은 재정 손실로 이어져 교수 충원도 어렵게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의 구조 개혁 정책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커녕 경쟁력 약화라는 악순환으로 빠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에서 정부는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를 불허한다는 이른바 ‘3불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구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에 강제하는 것은 많아지지만 대학의 자율성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대학 경쟁력 강화의 해법은 정부 주도의 구조 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학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줘야 한다. 특히 사립대에 대해서는 자기가 가르칠 학생을 자기 기준으로 뽑을 수 있도록 학생선발권을 돌려줘야 한다. 물론 대학도 구조 개혁의 대상이 된 현실을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대학, 연구하는 대학,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을 지향하며 기본을 충실히 다져야 할 것이요, ‘특성화’로 경쟁력 강화의 승부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대학에 자율권이 돌아와야 한다.
예악(禮樂)의 조화를 떠올려 본다. 구조개혁이라는 ‘격식(禮)’만 강조하면 그 정책은 깨져버리고 자율이라는 ‘창의성(樂)’만을 강조하면 무질서로 흐르기 십상이다. 정부는 대학에 자율을 주고 대학은 이를 넘치지 않게 사용할 때 문제 해결 방안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정부 관계자나 대학 당국 모두 도전을 기회로 바꾸는 창조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박범훈 중앙대 제2캠퍼스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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