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한성’으로 표기하는 데 따른 실제적 혼란도 있다. 서울대로 가야 할 편지가 한성대로 배달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중국인 교수가 재작년 한국에 처음 왔다가 한국 사람들이 서울을 한성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서울을 영어로 ‘Seoul’이라고 쓰는 것을 몰랐느냐고 반문했더니 ‘Seoul’은 한성의 영어 이름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중국의 지식인마저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그가 받은 충격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이런 혼동을 피하기 위해 서울시가 1년여 공모와 숙의 절차를 거쳐 서울의 중국어 지명 표기로 ‘서우얼(首,·首爾)’을 최종 선정한 것은 언어학적인 면에서 최적의 선택으로 판단된다. 첫째, ‘서우얼’은 서울과 음이 비슷하다. ‘머리 수(首)’는 으뜸 도시, 수도 서울을 상징한다. ‘너 이(,·爾)’ 자는 의미 없이 음으로만 사용됐는데 하얼빈(哈爾濱)처럼 ‘ㄹ(r나 l)’로 끝나는 지명을 표기할 때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글자다. 두 자 모두 획수도 적은 편이고, 중국 정부가 선정한 3500자 상용한자에 속한다. ,는 한국에서는 爾의 이체자이고, 중국에서는 爾의 간체자이다. 정자인 爾자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은 획수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중국어 화자의 절대 다수가 간체자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선택으로 보인다.
도시 이름 가운데 거의 유일한 우리말 지명인 서울마저 한자식으로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는 지명의 한자화가 아니라 서울의 중국어 표기방법을 정한 것으로, 세계 유수의 도시로서 막강한 브랜드 가치를 지닌 서울이라는 이름을 확산하는 의미가 있다.
중국 사람이 다른 나라의 지명을 어떻게 표기하고 부르는가는 중국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영문 이름을 우리가 스스로 정하는 것처럼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가 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터키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터키탕을 증기탕으로 바꾸었다. 한중 수교 직후만 해도 중국 사람들은 대개 남조선, 조선인, 조선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동안 양국민의 노력으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 한국인, 한국어라고 한다. 중국 대학도 조선어과라고 하지 않고 한국어과라고 한다.
그러나 수교 당시 미처 신경을 못 쓴 것이 바로 서울의 중국 이름이다. 수교와 더불어 한국은 중공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이제 중국어 화자들도 서울을 ‘한청’이 아니라 ‘서우얼’로 부르길 기대한다.
엄익상 한양대 교수·중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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