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농주]자녀 직업선택에 귀천 따지지 말자

  • 입력 2005년 2월 17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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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얘기다. 한 대학 졸업반 학생이 상담을 해 왔다. 부모에게 “호텔에 취업하려고 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부모가 며칠째 잠을 못 이루신다고 했다. “우리 아들 호텔에 취직시키려고 그 고생해 대학 공부시킨 것 아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부모를 더 설득해 보세요. 호텔은 학생에게 적성으로나 역량으로 아주 적합한 직장이 될 겁니다.” 그 학생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 줬다. 하지만 그 학생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은 호텔이 아닌 큰 제조업체의 관리직으로 취직했다. 그가 만족스럽게 직장생활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그는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비스 마인드가 상당히 좋아 호텔에서 일하면 언젠가는 호텔 경영인이 될 만한 자질과 품성을 지닌 학생이었기에 그의 대기업행을 반가워 할 수 없었다.

다른 풍경이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직업학교에 다시 진학해 기술과 기능을 길러 대기업 생산직에 취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사농공상에 귀천이 없으니 선비도 한양의 마포 나루에 가서 소금 장사를 해 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세상이 변하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대학생의 76%가 직업적 안정성, 높은 보수 등을 이유로 기회가 된다면 대기업 생산직에 입사하겠다고 답했다 한다.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일반화돼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구한다. 은행에서 여러 해 일하다 자동차정비소를 하는가 했더니, 이것도 별 흥미가 없다며 지금은 주말농장을 경영하며 고객들에게 요리솜씨를 자랑하곤 한다는 뉴질랜드의 한 젊은이 얘기를 들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일에는 진짜 귀천이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어른들은 직업의 귀천을 따진다. 택리지의 주장이 무색할 정도로 자녀들의 직업에 대해 귀천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기능을 배우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한국 부모들은 자식들이 기름때 안 묻히고 펜대 굴리며 일하게 하는 것만이 최선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지금 세상의 일터가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진로 편식증에 오염되게 만든 요인의 상당부분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기능을 배워 대기업의 생산직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그 열린 모습을 부모들은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볼트에 너트를 조이면서 제품의 마지막 완성도를 향상시켜 주는 대기업 생산직의 직업적 중요성은 그 어떤 직업에 못지않다.

대기업 생산직만이 아니라 국내의 중소기업 10만 개에 이르는 빈자리를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움직임이 생기길 바란다. 그런 풍조가 확산돼 우리나라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기고 싶다는 기업인들이 점차 줄어드는 긍정적인 흐름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김농주 연세대 취업상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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