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논의 시 영토조항(제3조)이 주요 쟁점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일부에선 영토조항 개폐를 고리로 우리 사회를 ‘친통일’과 ‘반통일’로 분열시키거나 좌우, 보혁 대결의 소재로 삼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부적절하다.
영토조항은 남북한이 ‘분단국’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 조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영토조항의 규범적 타당성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법통성 계승, 민족사적 정통성 및 민주적 정통성 보유에 있다.
영토조항은 남과 북이 남남(2개의 국가)이 아니라는 것,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를 ‘선언’하고 있다. 또한 영토조항은 헌법적 규범력을 갖는 실효적인 규정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일부를 점거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전복하려 하는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간주된다.
좌파 진영은 그간 법적 분단을 부인하는 ‘영토조항’과 법적 분단을 전제로 하는 ‘통일조항’(제4조) 간의 모순을 지적해 왔다. 더불어 영토조항에 의거한 실지(失地) 회복의 정책, 유엔 회원국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주장은 냉전적 대결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대북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는 논리를 펴 왔다. 이 모든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두 헌법 조항의 조화적 해석을 통해 모순점을 해소할 수 있고 영토조항 때문에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 나아가 통일이 실현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첨예한 남남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영토조항의 ‘발전적 개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수구 냉전, 반통일 세력이라는 부당한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파가 먼저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기서 현재의 영토조항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민족의 고유한 지배 영역과 그 부속도서로 한다. 다만, 통일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영토적 관할권은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으로 하며, 북한의 법적 지위(또는 남북 관계)는 법률로 정한다’로 개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행 ‘한반도’를 ‘한민족의 고유한 지배영역’으로 수정할 경우 통일 이후 간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마련된다. 더불어 영토 관련 법률로 ‘부속도서법’(독도 포함)을 제정할 수도 있다.
영토관할권을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하고 북한의 법적 지위를 법률로 정하는 것은 북한 지역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과 규범 간의 괴리를 해소하고, 북한에 대한 법 적용의 일관성 확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제고하려 함에 있다. 가칭 ‘북한의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또는 남북관계기본법)에서는 남북관계의 이중성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성을 반영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에 관해서도 규정토록 해야 한다. 이런 특별법을 별도로 제정하는 대신 현행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 헌법 제3조에 근거한 하위 법률로 자리매김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말처럼 분단 극복을 위해선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헌법 현실에 맞게 헌법 규범을 고치는 것은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며 이는 자유, 실용, 통합을 주창하는 뉴라이트의 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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